독립협회 독립관 준공-독립문 준공-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미8군사령부 일본으로 이동


서재필이 주도해 세운 독립문 (1896. 11. 22 준공)과 헐어버린 영은문
 
1896(조선 고종 33)  독립협회 독립관 준공

1897(조선 고종 34)  독립문 준공

1905  장지연,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 날을 어찌 통곡하지 않으랴)' 씀

1954  미8군사령부 일본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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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잡지 대죠션독립협회회보
 
1896. 11
 
목차
지석영 서재필의 논문이 있는 제1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다
 
《대죠션독립협회회보》 제1호 (1896. 11. 30)
《대죠션독립협회회보(大朝鮮獨立協會會報)》는 1896년 11월 30일 독립협회 기관지로 우리나라에서 우리 힘으로 발간한 첫 잡지이다. 제1호 표지에 발행호수·발행일자만 박혀 있을 뿐, 편집·발행·인쇄인 등을 적은 간기(刊記)가 없고, A5판(국판) 22면, 정가 10전, 매달 15일과 말일에 나오는 반월간지이다. 1897년 8월 15일 제18호로 종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에는 ‘THE CHOSUN. NOVEMBER 30th, 1896.’을 나타내고, 제2호부터 제18호까지 표지에는 ‘정동 출판(貞洞 出版)’·‘대정동 출판(大貞洞 出版)’을 박았다. ‘정동 출판’이란 무슨 뜻인지 얼른 잡히지 않으나, 당시 정동 배재학당에는 근대적인 인쇄소가 있었다는 데서 몇 가지를 추측해 보았다.
 
편집체재는 제목·본문의 구별없이 같은 4호 활자를 썼고, 35자×14행으로 1단 세로짜기했으며, 쉼표·마침표 등의 문장부호가 없고, 문장은 순 한문체·국한혼용체·순 국문체를 함께 썼다. 이 잡지를 해제한 한 기록에서 보면, 그 판형을 ‘4·6판과 국판 중간 크기’라고 했는데, 가로 11cm×세로 17cm의 조판치수이고 보면 A5판(국판)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이 잡지보다 9개월 앞서 일본 동경서 나온 유학생 잡지 《친목회회보(親睦會會報)》가 있으나 일본서 발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그 이유인즉, “우리나라 잡지란 우리 영토에서 우리 문자로써 우리 힘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서 본다면, 《대죠션독립협회회보》가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무슨 문제를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생각해 보자는 과제로 적어 둔다.
 
그러면 이 잡지를 발행한 독립협회란 어떤 단체인지, 그 개념과 성립과정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독립협회’ 항(유영렬 집필)에서 살펴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 1896년 7월부터 1898년 12월에 걸쳐 열강에 의한 국권침탈과 지배층에 의한 민권유린의 상황 속에서 자주국권·자유민권·자강개혁사상에 의하여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운동을 전개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당단체이다.
 
1896년 7월 2일 독립문의 건설과 독립공원의 조성을 창립사업으로 하여 발족되었다. 창립자인 서재필(徐載弼)은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에 망명하여 민주주의와 과학문명을 익히고 있던 중, 갑신정변 주모자들에 대한 반역죄가 사면되고 조선에 개화정부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에 자유와 독립의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포부를 가지고 11년 만에 환국하였다. 서재필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개혁사상으로 민중을 지도 계발하여 자각된 민중의 힘으로 ‘자주독립의 완전한 국가’로 만들기 위하여, 정치적 집단의 필요성에서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이에 앞서 서재필이 같은 목적에서 창간한 《독닙신문》은 독립협회 창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독립협회는 당시 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주독립과 충군애국(忠君愛國)의 강령을 내걸고, 구미파(歐美派)의 총본산인 정동(貞洞)구락부 세력, 갑오개혁의 주동인물들의 모임인 건양(建陽)협회 세력, 자주개화정책을 추구하는 실무급 중견관료층 세력, 당시 형성되어가고 있던 각계 각층의 신흥 사회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발족되었다. 〈하략〉”
 
이 독립협회의 주역인 서재필(1864~1951, 호 송재(松齋))은 어떤 인물인지, 그 유년기부터 《대죠션독립협회회보》를 낼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는 1863년 전남 보성(寶城)에서 군수 서광언(徐光彦)의 아들로 태어나 7세에 상경하여 외숙인 판서 김성근(金聲根)의 집에서 한학을 배우고, 1882년 3월 별시(別試)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 무렵 김옥균(金玉均) 서광범(徐光範) 홍영식(洪英植) 박영효(朴泳孝) 등과 교유하면서 개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1884년 12월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천하로 실패한 후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과 일본으로 망명했는데, 일본이 냉대하자 그는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편 그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1885년 4월 부모와 형 재춘(載春)은 음독자살하고 아우 재창(載昌)은 참형되었고, 부인 김씨 또한 음독자살했으며, 두 살된 아들은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어 굶어죽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그는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YMCA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1886년 9월 펜실베이니어주에 있는 헤리힐맨고등학교에 입학, 1889년 6월 졸업할 때는 졸업생 대표로 고별연설을 할 만큼 특출했다. 그후 대학에 진학, 1893년 6월 컬럼비아의과대학을 2등으로 졸업하고 모교에서 병리학 강사가 되었다.
 
한편, 1894년 조선에서는 ‘갑오경장’이 일어나 대개혁이 단행됨과 동시에, 갑신정변의 주모자들에게 내려졌던 역적의 죄명이 벗겨졌다. 서재필은 1895년 5월 박정양(朴定陽)내각의 외무협판(協辦)에 임명되었으나 응하지 않다가, 그후 미국에 온 박영효의 권유로 1895년 12월에 귀국했다.
 
그는 자신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벼슬보다는 신문을 발간하여 국민을 계몽하며, 국민의 여론을 정부에 바르게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896년 4월 7일 《독닙신문》을 창간했고, 그해 7월 2일 ‘독립협회’를 창립했으며, 11월 22일 ‘독립문’을 준공했고, 11월 30일 《대죠션독립협회회보》를 내놓은 것이다.
 
제1호의 목차는 매우 간단하다. ‘독립협회 서(獨立協會 序)’··· 안경수(安駉壽)/ ‘송 독립협회(頌 獨立協會)’··· 본회원/‘독립협회규칙(獨立協會規則)’/ ‘독립협회윤고(獨立協會輪告)’/ ‘국문론’··· 지석영/ ‘공기’··· 피 제슨/ ‘독립협회 보조금 수입인명(獨立協會 補助金 收入人名)’ 등으로 배열되었다. ‘독립협회 서(獨立協會 序)’와 ‘송 독립협회(頌 獨立協會)’는 순 한문체, ‘독립협회규칙(獨立協會規則)’과 ‘독립협회윤고(獨立協會輪告)’는 국한문혼용체, ‘국문론’과 ‘공기’는 순 국문으로 쓰였다. 그 순서대로 내용을 보기로 하자.
먼저 “금아(今我) 대조선국인독립협회(大朝鮮國人獨立協會) 하위이작야(何爲而作也) 독립운자(獨立云者) 대발분지위야(大發憤之爲也) 협회거자(協會擧者) 역대발분지출야(亦大發憤之出也)······”로 시작되는 〈독립협회 서(獨立協會 序)〉는 독립협회 회장 안경수가 지었는데, 이를 국역하여 그 대의를 살펴본다.
 
“오늘에 우리 대조선국인의 독립협회는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는가? 독립이라 말함은 크게 발분한 때문이고 협회라 거명(擧名)함 또한 크게 발분하여 생김이라. 옛날 우리가 단군(檀君)이 개창(開創)하고 기성(箕聖)이 설교(設敎)하고 삼한(三韓)이 정치(鼎峙)하고, 고려(高麗)가 통일하고 우리 태조(太祖)가 하늘을 이어 등극(登極)하여 우리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로 전해 오기 수천백년 이래로, 나라도 우리나라이고 백성도 우리 백성이며 그 정치도 교화(敎化)도 우리 것 아닌 것이 없는데, 아직도 흘연(屹然)히 독립의 세(勢)를 갖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가?
 
나라가 작아서도 아니고 백성이 약해서도 아니며 정치나 교화가 개명(開明)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다만 두렵게나마 보존하는 것으로 편안히 여기고 유약(柔弱)하고 근신(謹愼)하는 것으로 습성(習性)이 되어, 나가서는 앞서 가는 지략(智略)이 없고 들어와서는 스스로를 지킬 지모(智謀)가 적어, 동쪽 배 왜(倭)가 정박하면 밤에 자다가 불을 만나고, 북쪽 기마(騎馬) 호(胡)가 침입하면 산속에 앉아서 비를 맞고 있었다.
 
그 기막힌 부끄러움을 슬퍼하고 그 극(極)한 모욕을 분개하여 부녀(婦女)나 어린이라도 칼을 뽑아 땅이라도 가르고 싶을 텐데, 어찌하여 벼슬아치들은 오직 노소남북(老少南北)의 당론(黨論)이나 일삼고, 선비들은 오직 심성이기(心性理氣)의 언전(言戰)이나 하며, 과거(科擧) 공부하는 사람들은 오직 시부표책(詩賦表策)의 상투적인 기예(技藝)나 하고, 인재(人材)를 전형하는 사람은 오직 문벌(門閥)의 고하(高下)나 저울질하여, 태(胎)속에 있는 쇳덩이를 녹여낼 대장장이가 없고 뼛속에 있는 기름덩이를 뽑아낼 약이 없다.
 
허식(虛飾)이 너무 많고 적폐(積弊)가 더욱 심하여 예의(禮儀)를 빙자하여 태평하고 하찮은 것을 달게 여겨 뽐내면서, 이용후생(利用厚生)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이르러서는 왼손 휘두르고 밖으로 내쳐, 마침내 오늘의 큰 어려운 길에 넘어지고 말았으니 혈기(血氣)있는 우리 동포가 어찌 한심(寒心)하고 통곡(慟哭)하지 않겠는가? 〈하략〉”
 
이 서문을 쓴 안경수(1853~1900)는 제3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에서 군부대신을 지냈으나 을미사변(1895)으로 파면되고, 춘생문(春生門)사건의 주동자로 형을 받았다가 특별사면으로 나와서 독립협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정치적으로 불운했던 인물로, 그후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0년 1월에 귀국, 이준용(李埈鎔)역모사건(1894)과 황제양위미수사건(1898)에 관련된 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후 1907년 신원(伸寃)되었다.
 
〈독립협회 규칙〉은 “제1조 본회는 독립협회로 칭(稱)할 사(事). 제2조 독립협회에서는 독립문과 독립공원 건설하는 사무를 관장할 사”로 시작하여 전21조로 이루어졌다. 또 〈독립협회 윤고〉에서는 건양(建陽) 원년(1896) 10월 19일자로 독립협회 임원을 발표했는데 그 명단은 이렇다. 회장 안경수(安駉壽) 위원장 이완용(李完用) 위원 김가진(金嘉鎭) 김종한(金宗漢) 민상호(閔商鎬) 이채연(李采淵) 권재형(權在衡) 현흥택(玄興澤) 이상재(李商在) 이근호(李根浩) 이재정(李在正) 유기환(兪箕煥) 박기양(朴箕陽) 김승규(金昇圭) 간사원 송헌빈(宋憲斌) 이건호(李建鎬) 남궁억(南宮檍) 심의석(沈宜碩) 정현철(鄭顯哲) 팽한주(彭翰周) 오세창(吳世昌) 이근영(李根永) 현제부(玄濟復) 문태원(文台源) 이계필(李啓弼) 구연소(具然韶) 박승조(朴承祖) 박용규(朴鎔奎) 홍우관(洪禹觀) 안영수(安寧洙) 서창보(徐彰輔) 이종하(李鍾夏) (이상 32명). 그리고 ‘독립협회’하면 으레 서재필을 떠올리는데, 이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그것은 서재필은 임원에 넣지 않고 고문으로 추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석영의 〈국문론〉은 우리 잡지에 나타난 최초의 ‘국어관계 논문’이 아닌가 싶다. 당시의 문장을 보기 위해 원문대로 옮긴다. 그 교정은 당시 《독립신문》 교보원(校補員)이던 주시경(周時經)이 보았다.
 
“나라에 국문이 잇서셔 용거시 사의 입이 잇서셔 말것과 흐니 말을 되 어음이 분명치 못면 남이 닐으기 반 벙어리라 더러 졔가 각야도 반 벙어리오 국문이 이스되 기 젼일지 못면 그 나라 인민도 그 나라 국문을 귀즁줄을 모르리니 엇지 나라에 관계가 젹다 리오
우리 나라 사은 말을 되 분명이 긔록슈 업고 국문이 잇스되 젼일게 지 못야 귀즁줄을 모르니 가히 탄식리로다 귀즁게 넉이지 아니은 젼일게 치 못이오 젼일게 치 못은 어음을 분명히 긔록슈 업 연고러라
 
어음을 분명이 긔록슈 업다 은 엇지 이요 자셰히 말리니 유지 군는 자셰히 들으쇼셔 우리 나라 국문을 읽어 보면 모다 평셩이오 놉게 쓰거슨 업스니 놉게 쓰거시 업기로 어음을 긔록기 분명치 못야 東(동녘 동)는 본 나즌 즉 동 려니와 動(움즉일 동)는 놉흔 연마 동 외에 다시 표거시 업고 棟(들 동)는 움직일동 보다도 더 놉것마 동 외에 다시 도리가 업스며 棄(버릴 기) 列(버릴 열) 이 두 글로 말진 첫에 표가 업스니 국문으로만 보면 列(버릴 열) 도 棄(버릴 기) 뜻과 흐며 擧(들 거) 野(들 야) 두도 국문으로만 보면 과연 분간기 어려운지라
 
이러으로 여간 문 사다려 국문을 계집사의 글이라 야 치지도외기로 국문이 졈졈 어두어 국가에셔 국문 내신 본의를 거의 닛게 되야스니 가셕도다 우리 나라 어린 처음에 쳔문 르침은 젼국에 통쇽이라 가량 몽학 션이 한문은 모르고 국문만 아는 사이 잇서셔 를 르치랴 면 列(버릴 열) 棄(버릴 기) 이 두 슬 엇지 분간야 르치리오 내가 샹 여긔 답답 음이 잇서셔 국문에 유의다 는 사을 면 미샹불 노노히 강론더니 평양군슈 셔샹집씨를 만나셔 들으니 그의 말이 내가 년젼에 례문관 한림으로 무쥬 적셩산셩 샤고 포쇄관을 갓다가
셰죵죠옵셔 어졍시와 두옵신 국문을 봉심온즉 평셩에는 아모 표도 업고 샹셩에는 엽혜 졈 나를 치고 거셩에는 엽헤 졈 둘을 쳐셔 표 얏더라 기로 그 말대로 상셩 거셩에 표 하고 보니 어시호 東(동녘 동) 動(움즉일 동) 棟(들 동) 棄(버릴 기) 列(버릴 열) 擧(들 거) 野(들 야) 음과 시 거울 흐니 셩인의 작신 본의 이치 비진시건마 후셰 사이 강명들 안코 우리 국문이 미진거시 만타야 귀즁쥴을 모르니 엇지 답답지 안흐리오 〈하략〉”
 
이상재 지석영은 독립협회 간부이고 안창호는 이때 18세, 1897년에 가입하여 평양에서 관서지부를 조직했으며,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논문을 쓴 지석영(池錫永 1855~1935, 호 송촌(松村))은 서울 낙원동 중인(中人) 집안에서 태어나, 의학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일찍부터 서학(西學)을 동경하여 중국에서 번역한 서양의학서를 탐독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종두(種痘)법을 맨 먼저 실시한 의사로서 학부대신에게 의학교 설립을 제의, 1899년 국립의학교가 설립되자 초대 교장에 취임, 이후 10년간 근속하면서 근대의학을 도입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개화운동에 지도자로서 앞장 섰으며, 독립협회의 주요 멤버로 크게 활약하면서, 개화가 늦어지는 큰 이유의 하나가 어려운 한문을 쓰기 때문이라고 보고, 알기 쉬운 한글을 교육하고 보급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자기보다 20세나 아래인 젊은 주시경(1876~1914)과 함께 ‘한글 가로쓰기’를 비로소 주창했다.
 
더구나 그가 편찬한 《자전석요(字典釋要)》는 그의 독창성이 발휘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漢字)자전이다. 종래의 운서옥편(韻書玉篇)과는 달리 각 자마다 ‘음과 새김’을 한글로 표시했으며, 정음과 속음을 나타냈고, 구상(具象)명사에는 그림을 곁들이는 등 많은 특색이 있다. 〈상·하〉 2권으로 상권에는 16,295자, 하권에는 그림과 함께 588자가 수록되었다.
 
1906년에 저술을 마치고 1909년 7월 회동서관(滙東書館)에서 발행된 이래 1925년에 제16판을 기록할 정도로 일제 때 가장 히트한 책으로 꼽힌다. 8·15 후에도 영창(永昌)서관에서 중판을 냈고, 1975년에는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본으로 발간했다.
 
(앞에 나온 서재필 안경수 지석영 등의 이력 사실은 《한국인명사전》(신구문화사, 1967), 《한국인물대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등에 의거, 간추린 것임)
다음은 피 제슨의 논문 〈공기〉인데, 피 제슨이란 서재필의 미국 이름 ‘Philip Jaishon’ 또는 ‘Jason, P.’를 한글로 적은 것이다. 그의 〈공기〉를 읽어 보자. (글투는 원문대로 두고 한글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현행대로 고쳤음)
 
“학문이라 하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 세계 있는 물건과 각색 천연한 이치를 자세히 공부하여,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사람에게 관계가 어찌 있는지, 그런 것을 궁구하여 쓸 것은 쓰고 못 쓸 것은 내어버리고 하는 까닭에, 문명 진보하는 나라들은 인민 교육을 제일 사무로 아는지라.
 
미개화한 인민은 천연한 이치와 세계물정을 공부하는 일이 없는 고로, 소견이 어둡고 소견이 어두운즉 의심이 생기고 의심이 생긴즉 할 만한 일도 못하고 안할 일도 하는지라, 그러하기에 그 백성이 어리석고 나라가 약하고 가난하여 외국에 대접을 못받고 국내에 불편한 일이 많은지라.
 
내가 이 책에 기재하려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보고 듣고 쓰는 물건들을 조선 인민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는 고로, 그런 물건을 차차 설명하려 하노라. 〈하략〉”
 
또 〈독립협회 보조금 수입 인명〉은 다음과 같다.
 
왕태자전하(殿下, 후일의 순종(純宗)) 1,000원(元)을 비롯하여, 이재순(李載純) 이윤용(李允用) 이완용(李完用) 등은 100원, 윤용선(尹容善) 박정양(朴定陽) 심상훈(沈相薰) 한규설(韓圭卨) 조병직(趙秉稷) 등은 50원, 안경수(安駉壽) 이근배(李根培) 등은 40원, 서재필(徐載弼) 김종한(金宗漢) 권재형(權在衡) 정낙용(鄭洛鎔) 이종건(李鍾健) 민경식(閔烱植) 민영환(閔泳煥) 등은 30원, 민상호(閔商鎬) 유기환(兪箕煥) 고영희(高永喜) 이채연(李采淵) 이재정(李在正) 한치조(韓致調) 이응익(李應翼) 윤웅렬(尹雄烈) 이학균(李學均) 윤정구(尹定求) 신기선(申箕善) 신석희(申奭熙) 김재풍(金在豊) 민영기(閔泳綺) 민병석(閔丙奭) 등은 20원, 미국부인 큰들러 16원,
 
현은(玄檃) 김두승(金斗昇) 조진태(趙鎭泰) 백완혁(白完赫) 김기영(金基永) 함우복(咸遇復) 우항선(禹恒善) 윤규섭(尹奎燮) 김가진(金嘉鎭) 이상재(李商在) 김각현(金珏鉉) 남궁억(南宮檍) 조성협(趙性協) 이건호(李建鎬) 송헌빈(宋憲斌) 김성규(金聲圭) 윤철규(尹喆圭) 조신희(趙臣熙) 민종묵(閔種默) 박용규(朴鎔奎) 조종서(趙鍾緖) 미국인 한사람 민영철(閔泳喆) 정훈교(丁薰敎) 김홍육(金鴻陸) 박기양(朴箕陽) 김용원(金龍元) 김중환(金重煥) 김영수(金永壽) 정기회(鄭基會) 이근영(李根永) 이해만(李海萬) 유정수(柳正秀) 김갑수(金甲秀) 윤왕헌(尹王憲) 이의정(李宜貞) 정대위(丁大緯) 미국인 교사 트엇 등은 10원,
 
달성(達成)회당 예배인과 최학규(崔學圭) 각 8원, 김근식(金近植) 7원, 임적준(任啇準) 홍순칠(洪淳七) 등은 6원, 미국 사는 조선인 박여선(朴如善) 5원50전, 이홍모(李鴻謨) 이도익(李度翼) 홍우관(洪禹觀) 방한덕(方漢德) 정대유(丁大有) 이준영(李準榮) 팽한주(彭翰周) 김승규(金昇圭) 한창수(韓昌洙) 이경식(李庚植) 이조수(李朝修) 박세환(朴世煥) 홍재준(洪在駿) 박경석(朴慶錫) 김지선(金止善) 변종헌(卞鍾獻) 조병건(趙秉健) 서정직(徐廷稷) 이강하(李康夏) 백낙균(白樂均) 등은 5원이다. (이상 98명, 합계 2,676원50전) 이들은 거의 한말 정치계의 중심인물로서 여기에는 충신도 있고 매국노도 있다. 이 보조금 명단은 종간호로 추정되는 제18호까지 계속 게재되었는데, 그 총계가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제18호의 보조금은 7명에 20전이다. 기대한 만큼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다
 
제2호(1896. 12. 15)의 〈회사기(會事記)〉는 서재필이 주도하여 세운 ‘독립문’ 준공식 광경을 적은 것이다. (원문을 옮기되 어려운 한(漢)자는 ( )에 넣고 한글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현행대로 했음)
 
“11월 22일 돈의문(敦義門 : 서대문)외 서교(西郊)에 거기(車騎) 운집(雲集)하고 노약(老若) 제휴(提携)하여 인산인해(人山人海)지중(之中)에, 일좌(一座) 녹문(綠門)이 청공(晴空)에 홍회(虹廻)하고, 태극(太極)국기를 그 문변(門邊)에 차괘(叉掛)하고 그 문 편액(扁額)에 주묵(朱墨)으로 대서특자(特字) 왈(曰), 〈독립문〉이라 하고 녹문 후 수십 보 외에 ‘독립협회기(旗)’를 건(建)하여 풍두(風頭)에 표번(飄翻)하며 백련포(白練布) 천막이 벽천(碧天)에 폐개(蔽盖)한 하(下)에, 의자 5, 6백좌(座)를 열포(列布)하였으니 차처(此處)는 곧 대조선국 인민이더라.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 성덕(聖德)을 화피(化被)하여 자주독립을 낙(樂)하며 별노니, 독립관 독립문을 창설하여 써 성대(聖代)성사(盛事)를 표지(表志)하려는데, 차일(此日)은 ‘독립문’ 입초(立礎)하는 날이라, 수월(月) 전부터 회장과 위원장과 간사 들이 ‘독입문’을 전 영은문(迎恩門)터에 건설하고 ‘독립관’을 전 모화관(慕華館)터에 수선(修繕)하므로,
 
왕태자 전하께서 장려하시는 의(意)를 하사하시고, 조야(朝野) 동포형제와 외국 빈객(賓客)까지 동심(同心)으로 그 일을 경축하여 ‘독립문’ 입초(立礎)하는 날 ······ 내회자(來會者) 무려 1천여인이요, 환장(圜帳) 밖에서 관청(觀聽)하는 자 부지(不知) 기만(幾萬)인이라, 오후 2시반에 정초(正礎)하는 역정(役丁)의 호사창성(呼邪唱聲)이 그치자 배재(培材)학당 학원(學員)들이 ‘조선가(歌)’를 부르며 대군주폐하 성덕을 송(頌)하며 본회의 영구함을 축(祝)하고, 그 다음에는 미국 교사 아펜셀라 씨가 경복(慶福)을 기도한 후에 회장 안경수(安駉壽) 씨가 본회 창시한 연유와 제회원의 면력(勉力)하심을 설명 연설하고, 한성판윤(判尹) 이채연(李采淵) 씨가 ‘어찌하면 독립을 영구히 본존할까’를 연설하고, 외부대신 이완용(李完用) 씨가 ‘우리나라 전정(前程)이 어떻게 될까’를 연설하고, 피 제슨 씨가 조선에 있는 외국사람들에게 영어와 조선말로 연설한 후에 배재학당 학원들이 ‘진보가(進步歌)’를 부르며, 육영공원(育英公院) 학원들이 체조 연습을 마친 후 회석을 본회 독립관으로 옮겨 다과로 내빈을 향연(饗宴), 이때 부라운 씨가 구미(歐美)제국 빈객을 대표하여 축사를 했고, 빈주(賓主)가 십분 환희한 후 해산하니 이미 6,7시 경이러라.”
 
요즘같으면 TV로 1, 2분 안에 전할 뉴스를 이렇게 200자 5장이나 되게 적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김도태(金道泰) 저 《서재필박사자서전(徐載弼博士自敍傳)》(을유문고, 1972. 초판은 1948년 수선사에서 발간)에서 들어 보자.
 
“내가 서울로 돌아와 본즉 민중전(閔中殿)은 벌써 그 전해에 왜인(倭人)들한테 피시(被弑)되었고, 내각으로 말하면 김홍집(金弘集)이가 총리대신, 내부대신엔 유길준(兪吉濬)이가 되어 일본 세력에 의한 정권이 성립된 때였다. 그때 일본공사는 고무라(小村壽太郞)인데, 고무라는 미국 하버드대학 졸업생으로 영어에 능통하였다. 당시 김홍집내각이라는 것이 결국 고무라 손안에서 놀아나는 것이었다. ······ 김홍집과 유길준은 나에게 외무대신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정계에는 아무 야심이 없고, 환국한 중요 목적이 인민을 가르치고 인민을 지도 계발하려는 데 있었던 까닭으로 그 요청을 굳게 거절하였다. 그리고 나는 미국의 한 시민으로 고문이 되기로 하였다.
 
내가 개혁하려던 것은 청국을 의뢰하는 사대당을 몰아내고 청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독립의 완전한 국가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생명을 내어놓고 싸우다가 도리어 역적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그 때문에 부모 처자까지 참혹한 최후를 당한 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길로 우선 무악(毋岳)재 안의 ‘영은문’이라는 것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던 ‘독립문’ 을 세우기로 하였다.
 
지금 서대문 밖에서 서북쪽으로 가면 무악재이거니와 그 전차 종점 얼마 전에 화강석 ‘독립문’이 있고, 그 돌문 앞에는 큰 돌기둥 두 개가 섰다. 옛날에는 그 큰 돌기둥 두 개 위에 나무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로 사람이며 말이며 차가 통행하였다. 〈중략〉 상국 명나라 황제의 조서(詔書)나 명령을 가진 사신이 오게 되면 우리나라 임금은 친히 무악재 밑까지 그 사신을 맞는 것이 예가 되어 그곳에 홍살문을 세웠던 것이다.”
 
그 홍살문이 영조문(迎詔門)이었고 그 영조문이 영은문(迎恩門)으로 바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은문은 조선이 중국의 명·청(明淸) 양국을 상국으로 섬길 때에 생긴 것이매, 우리가 중국의 노예라는 표라고 볼 수 있다. 한미통상조약에도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임이 확인되었고, 텐진(天津)조약이나 청일전쟁의 결과인 시모노세끼(下關)조약에도 그것이 확인된 그때까지 ‘우리가 남의 노예’라는 표시인 그 영은문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내가 본국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이 영은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더러운 표, 부끄러운 이 문을 없애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 ······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다 ‘독립문’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때마침 내가 가진 화첩 중에 파리의 개선문이 생각나서 그 규모를 축소해 그 모양만은 똑같이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때 독일공사관에 근무하는 스위스사람에게 설계도를 부탁 작성하였다. 그리하여 심(沈)모라는 목수가 시공하였는데 총공사비는 1천5백여원이 들었다. 그 공사비에다 장려금 20원을 더하여 심 목수에게 지출하였다.”
 
‘자서전’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는 1896년 4월 7일자로 창간된 《독닙신문》(제12호부터 《독립신문》으로 바뀜, 이하 《독립신문》이라 칭함)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는 그 〈창간 논설〉의 첫 부분을 원문대로 옮긴다.
 
“우리가 독닙신문을 오 처음으로 출판 죠션 속에 잇 내외국 인민의게 우리 쥬의를 미리 말여 아시게 노라
 
우리는 첫 편벽되지 아니 고로 무당에도 상관이 업고 샹하귀쳔을 달니 졉 아니고 모도 죠션 사으로만 알고 죠션만 위며 공평이 인민의게 말 터인 우리가 서울 셩만 위게 아니라 죠션젼국인민을 위여 무 일이든지 언여 주랴
 
정부에서 시 일을 셩의게 젼터이요 셩의 졍셰를 졍부에 젼터이니 만일 셩이 졍부일을 자세이 알고 졍부에서 셩의 일을 자세이 아시면 피에 유익 일만이 잇슬터이요 불평 과 의심 각이 업서질 터이 〈하략〉”
 
《독닙신문》 창간호 (1896. 4. 7)
《독닙신문》 영문판 (1896. 4. 30)
《독립신문》은 1899년 12월 4일 제278호로 종간했는데, 그에 앞서 1898년 5월 서재필이 다시 미국으로 간 뒤에는 윤치호(尹致昊)가 사장이 되어 경영했으나 정부와의 마찰 등 경영이 원활치 못했다. (《독립신문》 이야기는 다음 항 《죠션크리스도인회보》에도 실렸으니 참조하시라.) ⇨ 《친목회회보》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 첫 잡지 대죠션독립협회회보 - 1896. 11 (한국잡지백년1, 2004. 5. 15.,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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