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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후꾸시마 참사 10년 후 지금: 3배가 된 재앙을 맞이한 현지 모습
BBC 원문 3시간 전 [시사뷰타임즈] 후꾸시마 핵발전소 참사는 2011년 3월11일에 있었으므로, 이제 내 후달인 3월이 되면 만으로 꼭 11년째이다. 유엔 전문가 위원회 및 WHO (세계보건기구) 등이 아무 일도 없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헛소리’ 를 몇 년전에 했지만, 후꾸시마 현지의 현재 모습은 대규모 폭격을 당한 듯한 모습이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진 채 그대로이며, 이 사건 뒤에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은 것이라며 노동자 한 명의 유족들엔 보상을 해주었고, 또한 젊은이 6명이 갑상선 암에 방사능 노출 때문에 걸린 것이라고 운영자인 동경 전기 전력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있는데, 막상 현지 모습은 너무도 고요하고 적적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다 -영상에서- 영상 자막: 일본은 지진을 기록해온 이래 가장 큰 지진의 타격을 받았다. 현지 주민: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고, 발전소에서는 연기가 보였다.“ 버락 오바마: “파괴로 인한 피해가 일본에서 속출하고 있는데, 마음 아픈 일이다. 현지 주민: “전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식들에게 해준 것중 가장 잘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직 고향으로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상 자막: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곳에선 시간이 정지된 채 있다. 모든 것이 얼어있던 새벽 2:46, 그 순간 지진이 일본을 덮쳤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최악인 핵 참사 중 하나를 낳았다. 2011년3월11일, 진도9나 되는 강진이 대해일을 일으키며 18,000명 이상을 죽였고 TEPCO의 다이이찌 핵발선소를 녹여버렸다. 이 지진은 1천년 동안 일본이 겪은 것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작은 도시 전체가 대해일 바닷물에 휩쓸려 갔고 지도 상에서 씻겨 없어져 버렸다. 대피한 사람은 15만 명 이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과 가족을 잃었다. 정신적 외상 및 대피자들이 겪은 압박감으로 인해 사망자가 2,200명 이상 더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지 주민3: “우리 친족 10명이 실종됐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과 연락 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에 대해 마우 걱정이 됩니다.” 영상 자막: 그 여파 속에, 정부와 언론이 내놓은 정보는 분명치가 않다. 현지 주민4: “우선, 전 그 어떤 보건에 대한 걱정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겠습니까? 분명한 정보를 받았으면 합니다.” 영상 자막: 사회적 신뢰가 엄청나게 무너졌고 대중들의 핵 발전소에 대한 확신감도 붕괴됐다. 방사능은 우유 및 야채 속에서도 나타났으며 어촌과 농촌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3배의 재앙은, 대해일과 핵 낙진 및 일본 경제에 끼친 엄청난 손상 등이다. 오늘날 후꾸시마에 있는 핵발전소 시설은 해체되고 있는 중이다. 오염된 폐기물 엄청난 양이 수거됐는데 어디에 저장해 놓아야 할 지는 현재 진행 중인 현안 문제이다. 정부는 이 참사가 1,983억 달러 어치를 망가뜨렸다고 추산하면서 2051년까지 완전히 청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이찌 다니가와, 교수 후꾸시마 의대: “여러 마을들이 생명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주민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원래의 집으로 되돌아 왔지만, 원래의 집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다른 사람들은 시와 중앙 정부가 개발한 재건출 공영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상 자막: 복구를 돕기 위해, 정부는 이 지역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되돌아 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많은 대피민들은 과거에 후꾸시마를 떠났다, 현지 주민4: “전 조용한 인생을 살아하고 싶습니다. 어쨌거나 전 살아남았으므로 전 이제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영상 자막: 후꾸시마 재앙을 유발시킨 지진은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일부는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하여 낙진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후꾸시마와 그곳의 주민들은, 오염이 완전히 제거되기까지는 앞으로 많은 세월이 걸릴지라도, 현재 서서히 회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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