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픔의 시간들 (35)
.
그대가 뭐가 뚱뚱해?
.
여자가 아름답게 태어나거나,
예술방면의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
.
만약 그 두 가지 조건을 겸비하고 태어났다면,
그 은혜는 최고의 영광이 기대되는 행운이라고 하겠다.
.
성우 정은숙은 160센티 정도 키에,
매력있는 몸매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당시 평균신장보다 더 크고 뚱뚱하다고 생각하여,
그게 불만이었다.
.
의상을 맞출 때도 그녀는 될 수 있으면 튀지 않는 색,
감색(紺色 :곤색)이나 잿빛 등을 택했다.
.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해,
목걸이, 귀걸이, 반지 같은 액세서리는 일체 안 했다.
.
그래도 나보고는 모양 좀 내라고 여러 번 충고했다.
"넌 왜 모양을 안 내니? 내가 너라면, 아주 깜찍하게 하고 다닐 거야."
.
세상이 군사정권으로 바뀌어, 기가 죽을 대로 죽은 사회분위기에 눌려,
숨도 쉬기 힘들었던 방송가족, KBS와 CBS(기독교방송국) 성우들은,
처음으로 함께 파주 소령원 최숙빈(崔淑嬪) 묘로 야유회를 갔다.
..
1963년 5월 16일 목요일,
아침부터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바람은 부는 듯 마는 듯, 기온은 약간 더워지려고 하는 날씨.
산과 들의 연초록 나뭇잎들이 점점 색이 짙어지는 이름다운 계절,
사람들 피부도 싱그럽게 윤이 났다.
.
버스를 대절하여 대가족이 목적지에 도착, 여자성우들은 풀밭에 누워,
오랜만에 방송이나 영화녹음의 피로에서 벗어나,
.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김밥과 과일을 즐기면서,
애들처럼 모두 큰 소리로 웃으며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
당시 칼라필름은 흑백보다 훨씬 고가였는데도,
이서구(李瑞求) 작가님은 칼라필름으로 여자성우들을 많이 찍어주셨다.
.
며칠 후 이서구 선생님은 성우 수대로 사진을 전부 인화하여
남산방송국 연출계로 손수 갖고 오셨다.
..
정은숙 것은 내가 대신 맡았다가 다음 그녀 만나는 기회에 전했다.
사진을 받아본 그녀, 좋아할 줄 알았더니,
사진 기운데 한 장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
"왜 그래?"내가 놀라 물었다.
"살찌고 비기 싫어~~."입속으로 그녀는 중얼거린다.
.
원, 참! 살은 무슨 살이 쪘다고... 내가 보기엔 딱 보기 좋은데...
.
경복궁 구내, 후에 중앙박물관이 있었던 자리는 전의 중앙청 정부청사였다.
그 후 얼마 안 지나, 거기서 정은숙과 영화녹음을 같이 하게 되었다.
.
점심에 중앙청 구내 레스토랑에서,
둘이 같이 돈까스를 먹고 영화녹음실로 돌아왔다.
근데 그녀가 어디 간단 말도 없이 사라졌다.
.
한참 후 녹음실로 들어와 슬며시 내 옆에 앉으면서,
그 아가씨 나만 들으라고 속삭였다.
.
"나,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가서 돈까스 하나 더 먹고 왔다!"
그 말을 하는 그녀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외쳤다.
.
여보세요! 그러면서 살 빠지기 바래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