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北, 바로 지금 한국 전쟁 포로들을 탄광 노예로 부리고 있다





[김혜숙의 노예생활 묘사 그림 모두 보기]

 


 

: 로라 비커, BBC 서울 특파원


 

입력 2021.2.25.

BBC 원문 2시간 전

 

[시사뷰타임즈] 한 인권단체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쟁 포로 여러 세대들이 북한 정권 및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을 위한 돈 벌이를 위해 석탄 탄광에서 노예 노동력으로 쓰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BBC가 이 주장을 면밀히 살펴봤다.

 

내가 TV에서 족쇄에 묶인 채 끌려가는 노예들을 보면, 나 자신을 보는 듯하다.” 최기선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53년 전쟁이 끝나면서 북한이 사로잡은 5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쟁 포로들 중 한 명이었다.

 

우리가 노동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주위에 있는 무장 호위병들이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고 우린 줄을 서 있었다. 이게 노예 노동이 아니라면 뭐겠는가?”

 

최씨 (실명 아님) 는 자신은 함경북도에 있는 탄광에서 다른 전쟁포로 (POW) 670명과 함께 40년 후 탈출할 때까지 계속 일했었다고 했다.

 

탄광 밖의 이야기들은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씨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은 치명적인 폭발과 대규모 처형에 대해 말해 준다. 이들은 결혼하여 자식을 2명 낳으라고 부추김을 받는 한편 최소한의 배급식량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밝히는데 -최씨처럼- 자식들은 자신들을 따라 탄광으로 들어가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북한 인권단체 (NKHR) 와 시민의 동맹의 맺고 있는 조애너 오사니악은 그의 보고서 피의 석탄 수출이라는 새로운 보고서에서 사람들 여러 세대가 일생 동안 탄광 지역에서 가장 최악의 박해와 차별을 받으며 테어나고, 살다 죽는다.” 고 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석탄 광산들 내부의 일에 대한 얼개를 말하면서, 일본 야쿠자를 비롯한 범죄 패거리들이 평양이 북한 밖으로 상품들을 밀매하며 밝혀지지 않은 액수의 돈 -한 보고서는 수억 달러일 것으로 추정- 을 벌도록 돕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돈은 북한의 은밀한 무기 프로그램을 강화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보고서는 북한 석탄 광산에서 직접 경험한 15명의 설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BBC는 이들 중 한 명과 면담을 했고 고통을 겪다가 북한 탄광에서 탈줄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사람 4명에게서 단독으로 들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우리에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므로 신원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평양은 계속 인권단체의 학대 주장을 부인하면서 논평하길 거부한다. 북한은 모근 전쟁포로들은 휴전혀정 조건에 따라 되돌려 보냈다고 강변하는데, 한 정부 관계자는 앞서 공화국의 품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씨는 이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은 무장 병사들이 지키는 울타리가 쳐진 수용소 내부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는 열심히 일을 해주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결국 한국으로 되돌아가리라는 모든 희망이 희미해졌다.

 

 

7살 밖에 안 되는 노동자들

 

 

북한 석탄 광산의 현재 강제 노동 체제는 한국 전쟁이 난 뒤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NKHR의 보고서에선 이 노동 체제를 대물림된 노예제라고 묘사했다.

 

인권단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주요 석탄, 마그네사이트, 아연 그리고 함경남북도에서 가장 큰 광산들로 끌려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나 광산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 모두가 전쟁 포로는 아니다.

 

김혜숙은 호위병들에게서 자신의 할아버지가 전쟁 동안 한국으로 갔고 그게 자시이 10대일 때 가족들과 함께 석탄 광산에서 일하라고 보내진 이유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혜숙의 운명은 성분” -계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가족이 북한 정권에 얼마나 충성해 왔느냐 및 가족중 노동당 일원인 자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결청됨- 에 의해 결정 나 버렸다.

 

한국과의 관련성은 자동적으로 한 사람을 최하 계층으로 만들어 버린다.

 

김혜숙은 탄광에서 일을 시작할 때 고작 16살이었다. NKHR 보고서에는 7

살에 시간제로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생존자들의 설명이 들어 있다.

 

김혜숙은 처음으로 내가 배졍됐을 때, 내가 속한 조에는 23명이 있었다.” 고 회상하면서 탄광들은 무너지곤 했고 탄광 수레를 끌어 올리는 철선이 끊어지기도 하면서 수레 뒤에 있는 사람들을 죽게 했다.” 고 말했다.

 

사람들은 탄광을 파내는 동안 폭발로 인해 죽곤 했다. 여러 광산에는 다른 층들이 있지만 가끔 물이 있는 층이 폭발하면 사람들이 익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엔 처음 23몀에서 6명만 남게됐었다.”

 

 

죽는게 좋은 일

 

 

그러나 한 사람의 성분은 광산 내에서의 운명만 결정짓는 게 아니다. NKHR 조사에서 인용한 전 국가보위부 (MSS) 요원의 말을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성분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고 한다.

 

충성 계층 사람들은 살려주려고 노력한다. 하층 계층 사람들은 죽여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 법에 따라 그 어떤 처형 -주로 한국 간첩들”- 도 행해진다고 했다.

 

저들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주 정당한 것을 보여주려면 자료 분석을 필요로 한다. 설령 똑같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계층이 좋으면 저들은 살려줄 것이다. 저들은 그를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 않는다. 보통 감옥이나 교정 노동 수용소로 간다.”

 

저들은 죽음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다. 눅을 수도 없다. 죽을 때까지 명령을 받으며 일해야 한다.”

 

면담 대상자들은 일부 죄수들이 죽임을 당한 MSS 심문실 뒤에 있는 사격 연습장이라는 곳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일부는 공개적으로 처형당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횽히 죽임을 당한다고 했다.

 

BBC는 이러한 설명에 대해 독자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린 자신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처형을 당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리라는 여자에게서 분명히 들었다.

 

리는 면담에서 BBC 우리 한국 지사 동료들에게 저들은 아버지와 남자형제를 말뚝에 묶으며 국가의 반역자, 간첩 그리고 반동분자라고 불렀습니다.” 라고 말했다.

 

리의 아버지는 전 한국 전쟁포로였는데, 이것은 리도 마찬가지로 광산에서 강제로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뜻했다.

 

리의 아버지는 한국의 고향 마을인 포항을 칭송했었고 남자 형제는 아버지의 주장을 자신의 동료 일꾼들에게 되풀이 했었다. 리는 그 일 때문에, 처형자 무리 3명이 아버지와 남자 형제를 쏘아 죽인 것이었다.

 

 

우린 항상 배가 고팠다

 

 

북한 관계자들은 전쟁 포로들에게 광산 수용소 내에서 보통의 삶 몇 가지는 허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들은 광부들에게 1956년 시민권을 주었다. 대부분에게 있어서, 이건 자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피면담자 모두는 결혼하여 자식을 갖는 것이 허용됐고 심지어 부추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혜숙은 이것도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들은 우리들에게 자식을 많이 가지라고 지시한다. 저들은 광산은 유지시킬 필요가 있는데 사람들은 매일 죽었다. 매일매일 사고가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저들은 우리들에게 자식을 많이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음식도 충분치 않고 기저귀 등은 전혀 없다. 그래서 설사 자식을 낳더라도 자식을 제대로 키우기가 힘들다.”

 

김혜숙은 전국적 사면의 일환으로 2001,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됐고, 결국 중국과 국경 인근에 있는 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다.

 

김혜숙은 광산에 있던 28년을 보여주는 삽화를 그리기로 작정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악몽을 이해하도록 돕고, 자신이 겪어온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NKHR 보고서에는 굶주림이 우리 면담 받는 모든 사람들의 지속적인 문제였다고 기록돼 있다.

 

하루도 굶지 않는 날이 없다. 우린 항상 배가 고팠다. 하루에 한 끼, 우린 다른 사람들이 하루에 세 번 먹다는 거도 몰랐다. 우린 길쭉한 쌀알을 받았는데, 이건 물에 적셔지면 계속 부풀어 오른다.” 라고 김혜숙이 말했다.

 

과거 전쟁 포로였던 한 사람은 우리들에게 몸이 아파도 일하러 가야 했다고 했다.

 

일하는 날 하루를 빼먹으면, 끼니 표를 빼앗길 수 있다.” 고 그는 말했다.

 

광부들은 수행 할당량을 받는다고 그는 내게 말했는데, NKHR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에 무연탄 (딱딱한 석탄) 3톤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할당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끼니표란 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렇게 되면 굶는다는 것을 뜻한다.

 

 

무기 프로그램 자금을 대 주는 노예제도

 

 

유엔 안보리는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한 돈줄을 질식시키기 위해 북한의 석탄 수출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2년 뒤, 독자적인 제재 관찰자들이 내놓은 한 보고서에선 평양이 생필품 특히 석탄과 모래를 해양에서 불법 수출함으로써 수억 달러를 벌어들인다고 했다.

 

지난해 12, 유엔은 북한이 유엔의 석탄 -무기와 대량파괴 프로그램을 위한 핵심 돈줄로 도움을 주는- 수출금지 조치를 계속 피해간다고 말했다.

 

HKHR 보고서는 또한 이러한 광산들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애너 호사니악 부장은 유엔에 석탄 채굴 총량 및 다른 제품들과 더불어 하는 불법 수출 그리고 이러한 수출과 국제적으로 연계돼 있는 공급망을 비롯, 북한의 노예제 및 강제 노동에의 의존성을 전수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조사는 사업체들 및 소비자들에게 분명한 경고체제를 통해 집행돼야 한다.”

 

한국 행정부는 평양과 함께 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심지어 북한과 평화 겨 제 가능성을 논의하기까지 했다. 한국은 인권에 대해 더욱 공격적으로 접근하면 북한이 협상 탁자에서 우르르 나가 버리는 것을 보게될 것이며 적대행위도 증가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 주재 유엔 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선 탈북자들도 포함시켜 인권을 평화와 비핵화로 통합시킬 때라고 했다.

 

 

이직도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과거 전쟁 포로 두 명에겐 하지만 희망이 좀 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법이 의사에 반해 붙들어 놓고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시킴으로써 입힌 피해에 대해 북한과 김정은은 17,600달러 (12,400파운드) 라고 명령을 했기에, 이정표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 판결은 북한에 억류돼 있는 전댕포로들의 고통을 한국 법정이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최씨도 그중 하나다.

 

저 배상금을 내가 죽기 전에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안서지만 이겼다는 것이 돈 보다 더 중요하다.” 고 그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때는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사치거리였을 과일 한 접시를 내게 내주면서도, 항상 광산에서 힘들게 일하는 채 남겨져 있는 사람들에게로 되돌아간다. 그는 내게 북한에 있는 자기 가족들에게 돈좀 보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난 이렇게 현재 기쁘게 지내는데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면서 한숨을 쉬었다.



North Korea enslaved South Korean prisoners of war in coal mines

 

By Laura Bicker

BBC News, Seoul

 

Published2 hours ago

 

Prisoners carrying coal to villas of secret police officials

IMAGE COPYRIGHTKIM HYE-SOOK

image captionFormer prisoner Kim Hye-sook drew these depictions of her experience in a North Korean coal mine

 

Generations of South Korean prisoners of war are being used as slave labour in North Korean coal mines to generate money for the regime and its weapons programme, according to a report released by a human rights organisation. The BBC has taken a closer look at the allegations.

 

"When I see slaves shackled and dragged on TV, I see myself," Choi Ki-sun told me. He was one of an estimated 50,000 prisoners seized by North Korea at the end of the Korean War in 1953.

 

"When we were dragged to labour camps, we were at gun point, lined up with armed guards around. What else could this be if not slave labour?"

 

Mr Choi (not his real name) said he continued to work in a mine in North Hamgyeong province alongside around 670 other prisoners of war (POWs) until his escape, 40 years later.

 

It is not easy to get stories out of the mines. Those who survive, like Mr Choi, tell stories of fatal explosions and mass executions. They reveal how they existed on minimal rations while being encouraged to get married and have children who - like Mr Choi's - would later have no choice but to follow them into the mines.

 

"Generations of people are born, live and die in the mining zones and experience the worst type of persecution and discrimination throughout their lifetime," explains Joanna Hosaniak, one of the authors of a new report, Blood Coal Export from North Korea, from the Citizens' Alliance for North Korea Human Rights (NKHR).

 

The report outlines the inner workings of the state's coal mines and alleges that criminal gangs, including the Japanese Yakuza, have helped Pyongyang smuggle goods out of the country earning untold sums of money - one report estimates the figure at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 which is thought to be used to prop up the secretive state's weapons programme.

 

The report is based on the accounts of 15 people who have first-hand knowledge of North Korea's coal mines. The BBC interviewed one of the contributors and we have independently heard from four others who claim to have suffered and escaped from North Korea's coal mines. All but one person asked us to protect their identity to keep their remaining families in North Korea safe.

 

Gathering mountain herbs for nutrition

IMAGE COPYRIGHTKIM HYE-SOOK

 

Pyongyang consistently denies allegations of human rights abuses and refuses to comment on them. It insists all POW's were returned according to the armistice terms, with a government official previously saying that any who remained wished "to remain in the bosom of the republic".

 

But Mr Choi says this is not true. He told us that he lived inside a fenced-off camp guarded by armed troops.

 

At first he was told that if he worked hard enough he would be allowed to go home. But eventually all hope of returning to the South faded.

 

Workers as young as seven

 

The current system of forced labour in North Korean coal mines appears to have been set up after the Korean War. The report by the NKHR described it as "inherited slavery".

 

South Koreans were taken to major coal, magnesite, zinc and lead mines mostly in North and South Hamgyeong Provinces, according to the human rights group investigation.

 

But not everyone who ends up in the mines is a prisoner of war.

 

Kim Hye-sook was told by guards that her grandfather went South during the war and that is why she was sent to work in the coal mine with her family as a teenager.

 

Her fate was determined by her "songbun" - or class, a judgement made on how loyal a family has been to the regime and how many are member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Connections to South Korea automatically puts a person in the lowest class.

 

"Life of slaves not human beings"

IMAGE COPYRIGHTKIM HYE-SOOK

 

Ms Kim was just 16 when she started work in the mine. The NKHR report has accounts from survivors who said they started part-time work in the mine from age seven.

 

"When I first got assigned there were 23 people in my unit," she recalled. "But the mines would collapse and the wires that pulled the mine trolley would snap and kill the people behind it.

 

"People would die from explosions while digging the mines. There are different layers, in the mines, but sometimes a layer of water would burst and people could drown. So in the end only six remained alive of the initial 23."

 

'Death is a good ending'

 

But your "songbun" doesn't just determine your fate in the mines - it can also determine whether you live or die, according to a former member of the Ministry of State Security (MSS) quoted in the NKHR investigation.

 

"You try to let loyal class people live. You try to kill off people from a lower class."

 

But he said any executions - mainly of "South Korean spies" - were done according to "North Korean laws".

 

"You need the data analysis to show it's very justifiable to kill this person. Even if they've committed the same crime, if your class is good they will let you live. They don't send you to the political prison camp. You go to an ordinary prison or a correctional labour camp.

 

"You don't kill them because death is a good ending. You can't die, you have to work under orders until you die."

 

The interviewee described a "shooting gallery" at the back of the MSS interrogation room where some prisoners were killed. He said some were publicly executed while others were killed quietly.

 

Prisoner beaten and killed for 30 stolen corns

IMAGE COPYRIGHTKIM HYE-SOOK

 

The BBC has been unable to independently corroborate this account. But we did hear from Ms Lee who remembers the moment her father and brother were executed.

 

"They tied them to stakes, calling them traitors of the nation, spies and reactionaries," she told my colleagues from BBC Korean in an interview.

 

Her father was a former South Korean prisoner of war and that meant she too was forced to work in the mines.

 

Ms Lee's father had praised his South Korean hometown, Pohang and her brother had repeated that claim to his workmates. Ms Lee said that for that, teams of three executioners shot both of them dead.

 

'We were always hungry'

 

North Korean officials appear to have allowed the prisoners of war some aspects of normal life within the mining camps. They gave the miners citizenship in 1956. For most, that was the moment they knew they were not going home.

 

All of our interviewees were allowed and even encouraged to get married and have children. But Ms Kim believes this too had a purpose.

 

"They would tell us to have a lot of children. They needed to maintain the mines but people died every day. There are accidents every day. So they would tell us to have a lot of children. But there's not enough food and no diapers etc - so even if you do give birth to a child it was hard to raise them successfully."

 

Ms Kim was released from the prison camp in 2001 as part of a country-wide amnesty, and eventually escaped from North Korea by crossing a river near the border with China.

 

She decided to sketch illustrations of her 28 years in the mine, saying it helped her deal with some of her nightmares, and show others what she'd been through.

 

Hunger was a constant problem for all our interviewees and is documented in the NKHR report.

 

"A day didn't pass without going hungry. We were always hungry. One meal a day, we didn't know other people ate three times a day. We were given long grain rice, which continues swelling soaked in water," Ms Kim told us.

 

One former prisoner of war told us that even if they were sick they needed to go to work.

 

"If you missed a working day, then your meal ticket could be taken away," he said.

 

Miners were given quotas to fulfil, he told me, estimated at around three tonnes of anthracite (a form of hard coal) a day by the NKHR report. Not meeting it could mean no meal ticket which meant going hungry.

 

'Slavery' funding weapons programme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banned North Korean coal exports in a bid to choke off funding for its nuclear and ballistic missile programmes.

 

But two years later, a report by independent sanctions monitors said that Pyongyang had earned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through illicit maritime exports of commodities, notably coal and sand".

 

In December, the United States said North Korea continued "to circumvent the UN prohibition on the exportation of coal, a key revenue generator that helps fund its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grams".

 

The NKHR report also claims that the mines are continuing to expand.

 

Deputy Director Joanna Hosaniak called on the UN to fully investigate North Korea's dependence on slavery and forced labour including "the full extent of the extraction and illegal export of coal and other products, and the international supply chain linked to these exports".

 

"This should also be enforced through a clear warning system for the businesses and consumers."

 

"My youth lost with this prison mine cart"

IMAGE COPYRIGHTKIM HYE-SOOK

 

In the South, the administration has focused on engagement with Pyongyang and even discussed the possibility of a peace economy with the North. Seoul has argued that taking a more aggressive approach on human rights would see Pyongyang storming away from the negotiating table and could also lead to an increase in hostilities.

 

But a report by the UN 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in Seoul said it was time to "integrate human rights into the peace and denuclearisation talks" which should also involve input from North Korean defectors.

 

Many still suffering

 

For two former prisoners of war who were forced to work in the mines there has been some hope, however. They won a landmark legal victory after Seoul Central District Court ordered North Korea and its leader, Kim Jong-un, to pay them $17,600 (£12,400) in damages for holding them against their will and forcing them to work in the mines.

 

This was the first time a court in the South recognised the suffering of prisoners of war held in the North.

 

Mr Choi was one of them.

 

"I am not sure I will see the money before I die but winning is more important than money," he told me at his apartment south of Seoul.

 

But his mind always returns to those left toiling in the mines as he serves me a plate of fruit which would once have been an unthinkable luxury. He tells me he's trying to send his family in the North some money.

 

"I think of how much they must be suffering while now I am happy," he sighed.

 

[기사/사진: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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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개관]

바이든의 V.P. 카말러 해리스: 꼭 알아야 할 5가지 캘러포녀 상원의원 카말러 해리스가 미시건 주 디트로잇에서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 지지... 더보기

[朴 탄핵 전후 족적]

박근혜, 마지막 판결: 한국 대법원, 20년 징역 형기 옹호 2017년, 체포 직후, 법정으로 이끌려 가는 박근혜. IMAGE COPYRIGHTAFP 최순실 (중앙) 은 박근혜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