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 [ Lenin, Vladimir Il`Ich ] (신빌리스크) 1870. 4. 22. ~ 1924. 1. 21


 
출생 - 사망 1870. 4. 22. ~ 1924. 1. 21.
출생지 신빌리스크(현재 울리야노프스크)
직업 러시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지도자
분야 마르크스주의
국적 러시아
관련인물 마르크스, 엥겔스
 
경력사항
페테르부르크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룹을 '노동자 계급 해방투쟁 동맹' 으로 통일 후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됨(1895~)
1900년 국외로 망명 후 마르크스주의 신문 「이스카라」 발행
볼셰비키 당 건설(1903~)
제1차 러시아 혁명 주도(1905~)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주도(1917~)
10월 사회주의 혁명 성공(1917~)
 
마르크스, 엥겔스의 후계자, 러시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지도자, 러시아 공산당 및 소비에트 연방국가의 창설자. 신빌리스크(현재 울리야노프스크)의 학교 교사의 가정에서 4월22일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쟌 대학 법과에 입학(1887). 그곳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시(市)에서 추방당하고, 코크시키노 촌(村)에서 경찰의 감시하에 놓여졌다. 1891년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을 청강생으로 졸업하고, 카쟌, 사마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1888~1893)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다음, 사마라에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그룹을 조직했다.
 
1893년에는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지도적 지위에 서게 되고, 노동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했다. 1894년에는 최초의 저작 『인민의 벗은 누구인가』를 써서 나로드니키의 오류를 비판하며,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올바른 길을 제시했다. 1895년, 페테르부르크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룹을 '노동자 계급 해방투쟁 동맹'으로 통일하지만, 곧 체포ㆍ투옥되고 시베리아로 유형당한다. 1900년, 국외로 망명. 그 이후, 러시아 제1차 혁명(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시기에 귀국한 것 외엔, 1917년 4월에 귀국하기까지 외국에 머물러 있었다.
 
먼저 국외에서, 러시아에 널리 보급하기 위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신문 「이스카라」를 발행하여 새로운 형태의 마르크스주의 당(黨)과 그 강령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또 수정주의자ㆍ기회주의자와의 투쟁을 전개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1898년에 창립되었는데, 1903년의 제2차 대회에서 볼셰비키 당이 건설되고 레닌의 지도 하에, 노동자ㆍ근로농민을 짜르 지배로부터 끌어내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가 깊이 관계하고, 그의 지도 하에 진행되었던 혁명은 제1차 러시아 혁명, 1917년 2월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그리고 같은 해의 10월 사회주의 혁명이다.
 
레닌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사망한 후 역사단계의 새로운 전개를 보였던 시기에, 마르크스주의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러시아의 혁명운동 및 국제적 혁명운동에 관여함으로써 그 실천적 경험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으며, 그것의 신(新)시대로의 구체화를 수행했다. 『제국주의론』(1916)은 마르크스에 이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분석해 내고 제국주의 단계의 정치ㆍ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명확히 밝혔다. 그리고 제국주의 단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으로 인하여, 사회주의 혁명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국 또는 몇몇 국가에서 일어나 승리하는 것임을 증명했다.
 
그는 당에 관한 학설을 새롭게 전개하고, 당을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ㆍ공산주의 건설에 있어서의 지도와 조직의 힘으로서 제시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을 지도자로 하여 탄생하였는데 그는 내외의 반혁명세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끝까지 지켜내어 오늘날의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레닌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새롭게 첨가한 것은 그 전(全) 분야에 걸치며, 경제ㆍ정치ㆍ전략과 전술, 나아가 철학ㆍ사회주의 도덕ㆍ문화ㆍ예술론,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한 그의 견해ㆍ사상은 깊은 의의를 갖고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전개에 대한 전망과 그 후의 발전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그는 최초의 활동에서부터 변증법적 및 사적유물론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데에 뜻을 두었고, 그의 철학은 노동자 계급과 당이 신시대에 당면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방침으로 되었다. 철학에 있어서의 그의 기본적 저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은 20세기 초의 자연과학의 최신의 성과를 분석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본원리, 특히 인식론을 발전시키고, 마하주의에서 나타나는 철학 경향을, 유물론의 영향력을 강탈하고 관념론을 수호하려고 하는 현대 철학의 투쟁이라고 평가ㆍ비판했다.
 
이 비판은 현재도 여전히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 유물론 철학이 관념론ㆍ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항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철학의 당파성을 명확히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레닌은 유물론적 변증법이 '마르크스주의의 혼', '근본적인 이론적 토대'라고 주창하고, 변증법의, 현실에 근거를 둔 그 탄력적인 특징이 발전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또 변증법이 인식론ㆍ논리학과 통일적으로 파악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그 모델로서 제시했다(『철학노트』).
 
그는 만년에 『전투적 유물론의 의의에 대하여』(1922)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지금부터 해명하고 전진시켜야 하는 방향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남긴 철학상의 기여는, 이러한 것들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며, 철학사에 관해서도 그 방법, 각 철학설의 평가 등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있다. 1924년 1월 21일, 중병으로 요양하던 중, 사회주의 건설의 초기 단계에 그 활동을 그만두어야 했다.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러시아혁명, 세계를 뒤흔들다
 
"나는 여러분이야말로 러시아 혁명의 승리자이며,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군대의 전위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루어 낸 러시아 혁명은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계 사회주의 혁명 만세!" 레닌은 민중들 앞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였음을 선언하였다.
 
■ 혁명가, 레닌
 
1917년 4월 3일, 사람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기차역에 모여들었다. 노동자와 병사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계속해서 한 사람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레닌! 레닌!"
 
레닌은 손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군중들 앞으로 당당히 나아갔다.
 
"이제 빵과 평화를 위하여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가 갖도록 합시다. 모든 토지를 국가의 소유로 만듭시다! 무엇보다 이 지긋지긋한 제국주의 전쟁을 끝냅시다!"
 
사람들의 환호가 더욱 커져 갔다.
 
레닌은 차르를 암살하려다가 붙잡혀 사형당한 형의 영향을 받아 혁명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하 신문을 만들고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려다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기도 하였고, 해외로 추방되어 외로운 망명 생활을 견뎌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당당히 조국에 돌아와 혁명의 지도자로서 민중들 앞에 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1917년의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민중들에게 연설하는 레닌
오랜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레닌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외쳤다. 그는 아래로부터 전국적으로 솟아오르는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 공화국' 건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전쟁 반대'와 '임시 정부 반대'를 외쳤다.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혁명의 중심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식 이름이라는 이유로 제1차 세계 대전 후 '페트로그라드'로 바뀌었다가, 레닌이 죽은 후에는 '레닌그라드'로 불렸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사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이 오늘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바뀐 모습이다.
 
■ 러시아 혁명의 서막 '피의 일요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은 '피의 일요일'사건에서 싹텄다. 1905년 1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20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1년 전 조선을 둘러싸고 일본과 전쟁을 벌이다가 패배한 러시아의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굶주린 노동자 가족들은 '빵과 평화'를 외치며, 차르인 니콜라이 2세에게 자비를 구하려고 궁전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무자비한 총탄 세례였다. 붉은 피와 수많은 시체가 광장을 뒤덮어, 말 그대로 그 날은 '피의 일요일'이었다. 러시아 민중은 '자비로운' 차르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러시아 곳곳에서 차르를 타도하자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위기를 느낀 차르는 개혁을 약속하며 입헌 군주제 헌법을 제정하고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혁명의 열기를 꺾으려는 의도에서 나온만큼, 차르는 여전히 절대 권력을 누렸고 혁명 세력은 철저히 탄압받았다. 게다가 이 개혁이 결국 지주와 부농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임이 드러나자 러시아 사회의 계급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하여 러시아 전역에서 파업이 일어났고, 혁명의 열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이 때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1905년 혁명
1월부터 4월까지 8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에 나섰고, 6월에는 전함 포툠킨에서 해군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후 혁명의 기운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사진은 1905년 10월 노동자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총파업을 벌이는 모습이다.
 
■ 타오르는 러시아 혁명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차르인 니콜라이 2세는 서둘러 전쟁에 뛰어들었다. 발칸 반도를 차지하고 내부의 혁명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러시아 군은 차르의 기대와는 달리 패전을 거듭하였다.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붓다 보니 국내에는 식량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였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식료품 가게를 습격하는 일이 잦아졌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도 계속되었다. '빵과 평화, 토지와 자유'라는 구호는 전국에 울려 퍼졌다.
 
차르 정부와 싸우면서 노동자·농민·병사들은 자신들의 대표 기관인 소비에트를 결성하였다. 마침내 1917년 3월, 러시아 민중들은 왕궁으로 몰려들었다. 진압군을 싣고 올 기차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발이 묶였고, 전쟁에 지친 병사들까지 혁명 세력의 편에 섰다. 결국 니콜라이 2세는 쫓겨났고, 러시아 공화국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임시 정부는 민중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조국 방위 전쟁'을 계속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3월 혁명이 끝난 후 러시아로 돌아온 레닌은 임시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민중들은 소비에트가 권력을 가져야 하며, 전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을 지지하게 되었다. 드디어 레닌의 지도 아래 '11월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고, 임시 정부는 무너졌다. 새롭게 수립된 혁명 정부는 '평화에 대한 포고'와 '토지에 대한 포고'를 발표하여 전쟁 중지와 토지 사유의 폐지를 선언하였다. '노동자·농민의 정부'를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전개 
3월 혁명 1917년 3월, 시위 군중은 붉은 깃발을 들고 "차르를 타도하라! 전쟁을 반대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지를 누볐다. 차르의 로마노프 왕조는 무너졌다.
임시 정부 케렌스키 내각 3월 혁명의 결과 부르주아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그러나 케렌스키를 수반으로 한 임시 정부는 전쟁을 계속하고, 토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민중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11월 혁명 임시 정부를 반대하고 레닌을 지지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11월 혁명의 성공으로 노동자·농민 정부인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성립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자카프카지예 등 3개국이 가입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성립되었다.
 
러시아 내전 포스터 위는 '(혁명을 지키기 위하여) 당신은 지원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혁명군에 참가할 것을 독려하는 포스터이다. 아래는 자본주의 열강들의 원조를 받아 혁명 세력에 맞섰던 차르와 귀족, 산업 부르주아들을 레닌이 빗자루로 쓸어 버리는 내용을 그린 포스터의 일부이다.
 
■ 혁명은 하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
 
소비에트 혁명 정부 앞에는 혁명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혁명에 반대하는 귀족과 지주, 자본가들이 반혁명군을 만들어 격렬히 저항하고 나선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전 세계로 번지는 것을 두려워한 자본주의 열강도 군대를 직접 파견하여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였다.
 
러시아 각지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혁명과 토지를 지키기 위하여 무기를 들고 일어선 노동자·농민·병사들은 치열한 격전 끝에 마침내 1920년, 반혁명 세력을 물리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잇따른 내전으로 산업 시설은 폐허가 되었고, 기름진 땅은 황무지로 변하였다. 외국과의 교역도 모두 끊어졌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혁명 정부는 시장 경제를 일부 인정하는 신경제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922년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수립하였다.
 
한편 레닌은 각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을 연결하는 '코민테른(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을 건설하여 혁명의 세계화에 나섰다. 코민테른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동 운동과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을 지원하여 사회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레닌이 죽은 뒤에 집권한 스탈린은 강력한 계획 경제를 실시하여 군수 산업을 비롯한 중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면서 경제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반대파를 대거 숙청하여 독재 체제를 강화시켜 나갔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011.9.5,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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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88
  • 프란시스코 프랑코 (갈리시아 엘페롤) 1892.12.4 ~ 1975.11.20
  •   갈리시아 엘페롤 출생. 알카사르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族)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1921년 장군이 되었다. 1928년 사라고사에 신설된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나 1931년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1933년 사관학교는 폐쇄되고 발레아레스섬으로 좌천되었다.   1935년 10월 무어인 부대와 외인부대를 이끌고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봉기를 진압, 참모총장이 되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즉각 반(反)정부 쿠데타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정부에 의해서 카나리아제도(諸島)의 수비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해 7월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얼마 후 반란군측의 주요인물이 사망 혹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세력이 커져 10월 국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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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2-10
    • 2933
  • 호지명(호치민) 1890년 5월 19일 (베트남) - 1969년 9월 2일
  •   본명은 응웬 닷 탕(Nguyen Tat Thanh)이지만 어릴적 이름은 응웬 싱 콘이라고 불렀다. 호치민은 가명과 필명이 160여개가 되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베트남의 중부지방이며 행정구역은 응헤안주에 있는 호앙쭈(Hoang Tru)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훼이서 북쪽으로 360km떨어진 오지였으며 주변환경은 혹독했다. 그의 아버지는 농민출신으로 평범한 지식인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훼에서 관직에 올랐지만 그해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관직에서 오래가지 못해 면직되었다(1929년 사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응웬 닷 탕의 생활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1911년 발전된 서구의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의 6000톤급 증기선(船)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갔다.   1914~1919년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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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2-07
    • 3455
  • 마오쩌둥 1893년 12월 26일 (중국) - 1976년 9월 9일
  •   1967.1.8 반마오파가 제거되면서 중국의 문화혁명은 폭력혁명의 길로 달려갔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의 정치적 열광이 정점에 이른 시기를 1967년 1월 8일 반마오파를 제거한 시점부터라고 보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이른바 마오의 후반기 권력 독점이 시작되고 폭력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된 것이덩과 류가 제거된 시점부터라고 보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혁명, 엇갈리는 평가   문화혁명이 언제 시작돼서 언제 끝났는지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단지 베이징(北京)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대대적인 도전을 시작한 1966년부터 마오의 추종자인 4인방 세력이 축출되고 마오가 사망한 1976년까지를 문화혁명 기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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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2-05
    • 2546
  • 베니토 무솔리니 1883년 7월 29일 (이탈리아) - 1945년 4월 28일
  •   무솔리니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는 점은, 그에게는 도무지 일관성이라는 게 없었다는 점이다. 가령 움베르토 에코는 “무솔리니에게 철학 따위는 없었다. 단지 그럴듯한 말뿐”이라고 말했다. 무솔리니는 극좌에서 극우로 변신했고, 코스모폴리탄이었다가 국가주의자가 되었으며, 왕년의 무신론자로서 집권 중에는 자신을 “신이 이탈리아에 내리신 선물”이라 말했고, 왕정을 기필코 타도해야 한다고 했다가, 국왕의 보호자를 자처했다가, 다시 왕정반대론자로 돌아섰다. 그 자신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파시즘은 어떤 고정된 신념체계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불안   1870년, 중세 이래 천 년이 넘도록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던 이탈리아는 마침내 통일되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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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2-01
    • 2531
  • 이오시프 스탈린 1879년 12월 18일 (조지아) - 1953년 3월 5일
  •   1907년 12월 5일, 지금은 독립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이지만 당시는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었던 바쿠에서 한 여인이 티푸스로 죽었다. 예카테리나 스바드니제. 그녀는 약 2년 동안의 결혼생활 동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린 끝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 남편은 그녀를 절절히 사랑하기도 했었다. 아내를 묻는 자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긴 통곡 끝에,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인간적인 감정도 죽고 말았네.” 그랬다.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이제는 2년 전 레닌이 붙여 준 스탈린(강철의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 남자는 끝이 없는 비인간성으로 이후 46년의 세월을 살게 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인민의 피 위에, 강철의 제국을 건설한다.   러시아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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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1-28
    • 2965
  • 아돌프 히틀러 [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 1945년 4월 30일 ]
  •   1933.1.30 나치당 당수로서 독일 총리에 임명되다   1932년 히틀러는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36.8%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이듬해인 1933년 1월 30일 제 1당인 나치당의 당수로서 총리에 임명됐다. 이날을 가리켜 비극의 탄생이라고 해도 될까? 히틀러의 나치 독일 시대가 비로소 도래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를 누른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미 86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젊고 강력한 독일의 지도자에게 총리라는 실질적인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쿠데타를 획책하다가 투옥된 적이 있는데, 10년 만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얻은 것이다.총리가 된지 수년 만에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분명한 목표를 정해두고 총리가 되었는데, 무너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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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1-27
    • 2082
  • [세계의 독재자 73]
  • ▲ 영국 인명사전에서 분류한 세계 독재자 73명 [출처] [핏발울 배너 출처]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체제는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 독재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다양한 문화까지 부정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농부가 뿌린만큼, 일한만큼 수확하는 것이 당연하듯,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의 수직적 사회이동이 보장되어있어야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여러 정치적 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가 실험적이라 할 만큼 존재했습니다. 이 많은 여러 분야의 제도 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체질에 어울리지 않는 체제나 제도는 자연스럽게 기피대상이 되며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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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1-27
    • 13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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