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鄧小平) 1904년 8월 22일, 중국 - 1997년 2월 19일


[책 표지-청림출판사 제공]
 
1997년, 향년 93세의 나이로 중국 대륙을 떠나 빛나는 별이 되다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은 20세기가 시작되던 1904년 8월 22일 중국 쓰촨성 광안현 셰시항 파이방촌에서 출생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를 온전히 살아내고, 1997년 2월 19일,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에 베이징에서 93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그야말로 백년 중국을 중원에서 살아낸 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인들은 그를 ‘백년소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일 투쟁부터 마오쩌둥을 따르며 중국 공산당의 핵심으로 떠오르다
 
덩샤오핑은 항일 무장투쟁부터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과 대장정을 함께한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인물이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인 1918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신념으로 삼은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를 알게 됐다. 1921~1924년에는 파리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모스크바의 중산대학에서 공부하다 귀국해 1927년부터 공산당 지하운동에 참여했다. 1933년부터는 마오쩌둥을 지지하면서 대장정에 참여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해 중국을 경제 강국으로 만드는 데 디딤돌이 된 덩샤오핑.
그는 항일전 내내 공산당의 팔로군(八路軍)에서 정치위원을 지냈고, 1949년 장강 도하 작전과 난징 점령을 지휘하여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수립에 공을 세웠다. 1952년 정무원 부총리, 1954년 당중앙위원회 비서장, 1955년에는 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이후 마오쩌둥의 총애를 받으면서 정치인으로서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 빛났던 시기는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이 혼란에 빠지고부터다. 그는 이때부터 중국을 경제 대국으로 이끄는 디딤돌이자 징검다리가 됐다.
 
과거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중국공산당’을 줄여 부른 중공은 북한과 더불어 공산국가로 적대시되었다. 지금은 아무도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제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모범적인 국가로, 자본주의 국가에서보다 더 사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을 듣곤 한다.
 
21세기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을 이끈 지도자는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이 아니라 덩샤오핑이다.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지도자로서 인민의 나라를 만들었다면, 덩샤오핑은 인민의 나라를 부자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인민의 아들’로 인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즉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한 사회주의 정치 지도자이다.
 
해방되고는 마오쩌둥 주석을 잊지 않고, 부자 돼서는 덩샤오핑에게 감사드린다
 
시장경제에 대한 구상은 그를 10년간이나 고립시켰던 문화대혁명으로부터 기인했다.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실패 후, 정권에 불안감을 느낀 마오쩌둥은 부인인 강청을 필두로 하는 사인방과 홍위병을 앞세워 정적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극좌 운동을 벌였다. 당시 참신한 정치 개혁 세력으로 떠오르던 덩샤오핑은 하루아침에 모든 권력을 잃고, 유배지에서 연금 상태로 지내야 했다. 대학생이었던 덩샤오핑의 아들은 홍위병 학우들에게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고문에 시달리다 창문에서 뛰어내려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게 된다.
 
문화대혁명 동안 수없이 많은 희생과 중국공산당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중국의 운명을 시궁창에 빠뜨릴 뻔했던 문화대혁명에 대해 덩샤오핑은 ‘나쁜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좋은 일’이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던 그 사건을 두고 그는 ‘사람들의 사고를 촉진하고, 우리들의 단점을 인식하게 해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잘 드러난 말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정치에 복귀한 그는 1978년 5월경 중국의 주요 인재들을 서유럽 5개국으로 시찰보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전에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하고, 이것을 중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준비한 것이다. 그가 이토록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한 이유는 100년, 200년에 걸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서구에 비해 단기간에 중국이 시장경제 모델을 들여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인력도 낭비할 겨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덩샤오핑은 중국이 ‘다시 그릇된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노구를 이끌고 직접 경제 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이 활짝 핀 미국, 일본 등을 방문했다. 정치적으로는 적국이지만, 시장경제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경제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일본에서 닛산 자동차의 기미쓰 공장을 견학한 후, 그는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노동 생산율은 중국 장춘 제 1 자동차 회사의 수십 배에 이르는군. 이것이 바로 현대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
 
경제 강국으로 가는 세 발걸음, '삼보주'를 목표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현하다
 
그는 중국에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삼보주`(三步走)’라는 목표를 세웠다. 경제 강국으로 가는 목표를 향한 세 발걸음이다. 우선 제 일보인 ‘원바오’는 ‘인민이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초보적인 단계’이고, 제 이보인 ‘샤오캉’은 생활 수준을 중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며, 제 삼보인 ‘대동사회의 실현’은 중국의 현대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의 계획대로 중국은 지금 제 삼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후 10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실현할 때 절대 흔들리지 말라고 후계자들에게 당부했다.
 
덩샤오핑은 1979년 말, 미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찬위원회 지프니 부사장 등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만 있다는 견해는 정확하지 않소. 사회주의 국가에서 왜 시장경제를 할 수 없단 말인가요?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시장경제는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없지요. 시장경제는 봉건사회 시대에 시작했던 것이므로, 사회주의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과감한 경제특구의 개발, 계획적인 시장경제의 성공적인 운영으로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1993년 아흔 살에 가까운 덩샤오핑은 자본주의 경제의 취약점인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그것은 중국 경제가 발전한 후, 사회적 부의 분배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을 때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만약 많은 재산을 소수만이 누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누리지 못한다면, 분배가 공평하지 못하게 되고, 그에 따른 양극 분화를 초래하기 쉽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된다면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적절한 방안을 세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혁명가로서의 긴장감을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은 양극의 분화가 심화될 때 터지는 활화산과 같은 것이다.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위대한 사회주의자였다. 만년에 그는 말했다. “국가는 발전했다. 나는 부유한 나라의 한 공민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산주의 이상은 위대한 것이고, 사회주의는 경애로우며, 사회주의를 위해 일평생 투쟁하는 것은 값어치가 있다.”
 
'일국양제'의 구상으로 중국 속의 홍콩을 되살리다
 
덩샤오핑이 가장 빛난 시점은 바로 홍콩 반환 시점이 돌아올 때였다. 영국은 자본주의 홍콩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영토는 반환하되 홍콩에 대한 관리는 자신들에게 맡겨달라며 중국 정부에 중재안을 냈다. 이때 덩샤오핑은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홍콩은 무사히 중국 땅이 되었다.
 
1842년 8월 29일, 청나라가 영국 군함 콘월리스 호에서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면서 홍콩은 1997년까지 영국에게 조차되었다. 그후 150년의 시간이 지나고, 홍콩 반환 시점이 가까워지자 영국이 사전 협상을 위해 1979년 베이징을 방문, 매리 매클레호스 홍콩 총독을 만났을 때, 덩샤오핑은 ‘일국양제(一國兩制)’ 구상을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영국이 조차 기간이 만료된 1997년 이후에도 홍콩을 관리하고자 한 이유는 이미 홍콩에 엄청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약 홍콩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 그것들을 모조리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영국은 차선책으로 토지 매각 등을 통하여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홍콩은 자멸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때 덩샤오핑은 ”1997년 7월 1일, 반드시 홍콩을 돌려받을 것이다. 그것이 주권국가로서의 할 일이다.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인민들은 우리 지도자들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단, 홍콩은 자체의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우리는 우리들의 사회주의를 실시할 것이다. 당신들은 돌아가서 투자자들을 안심시켜라.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 나라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상반된 두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덩샤오핑의 구상, 즉 ‘일국양제’이다.
 
덩샤오핑은 1984년 12월 19일, 영중 홍콩 문제 해결에 관한 연합성명 서명식에서 당시 영국 총리인 마거릿 대처와 악수를 나누었다. ‘철의 여인’과 ‘강철 사나이’의 만남이었다. 훗날 대처는 일국양제 구상은 덩샤오핑의 천재적 발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1986년 10월, 덩샤오핑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접견했다. 이제 덩샤오핑의 소원은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돌아오는 홍콩 땅을 살아서 밟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반환 시점을 불과 5개월 남겨두고, 덩샤오핑은 1세기를 살아낸 거인으로 부유한 나라인 중국에서 눈을 감았다.
 
이 즈음, 많은 사람들이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일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장국영이나 유덕화, 임청하와 같은 홍콩 배우들이 인민복을 입고 다니는 것인가 하는 우려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홍콩은 여전히 자본주의 홍콩으로서 발전하고 있다. 덩샤오핑이라는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오쩌둥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권력에서 물러나 젊은 지도자를 키우다
 
덩샤오핑은 노간부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역할을 했다. 1982년에 그는 중앙고문위원회를 만들어 노간부들이 정치에서 물러나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덩샤오핑 자신도 초대 중앙고문위원회 주임을 맡아 5년 후 퇴임했다. 또한 이 과도기를 통해 정권 유지를 위한 제 2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았다. 위대한 지도자라 일컬어졌던 마오쩌둥 역시 권력 앞에서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는 퇴임하는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나이가 많으므로 퇴직하겠습니다. 우리는 새 사람을 발굴해내야 합니다. 고문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바로 노간부가 젊은 지도자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노간부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다름 아닌 새로운 후계자를 선택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중국과 가까이 있는 북한 지도자들은 덩샤오핑을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문화대혁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문제는 바로 당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지도자 간부들의 종신제였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이른바 덩샤오핑은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라 말할 수 있다.
 
중앙고문위원회는 10년간 존속했으며, 이후 해산했다. 노간부들은 고문으로서 조언은 가능하지만, 정부 정책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이것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결국 덩샤오핑의 솔선수범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중국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인민의 손에 의해 선택된, 인민의 아들에게로 넘어갔다.
 
백 년 세월을 견딘 한 그루 소나무 같은 지도자
 
1989년 11월 9일, 덩샤오핑은 은퇴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건강한 삶을 살았다. 한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고 수영을 즐겼으며, 지인들과 카드놀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서재 책상 밑에서 손자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고, 인민들과 함께 자신을 닮은 나무를 끊임없이 심었다. 덩샤오핑은 대가족이 모인 집안에서 식구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에 관한 많은 서적이 있지만, 대표작으로는 자신이 직접 감수한 3권으로 출간된 <덩샤오핑 문선>이 있다. 이 책은 ‘전세대 혁명가들이 후세대에 보내는 간절한 기대’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4년 8월 13일 쓰촨성 광안에서 열린 덩샤오핑 동상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 국가주석인 후진타오는 다음과 같이 덩샤오핑을 추모했다. “덩샤오핑 동지는 일생 동안 민족의 해방과 국가의 부강,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분투한, 빛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중국의 혁명과 건설, 개혁을 위해 영원히 남을 역사적 공헌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숭고한 사상과 인품, 위대한 인격적 매력을 갖춘 분으로, 우리들에게 고귀한 정신적 자산을 남겨주었다. 오늘, 우리가 덩샤오핑 동지를 가장 훌륭하게 기념하는 길은 그가 개척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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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원재훈 | 시인, 소설가글을 쓴 원재훈은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했으며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등의 시집과 <만남, 은어와 함께 보낸 하루>, <모닝커피>등의 소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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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베르 호자 [알바니아 1908년 10월 16일 ~ 1985년 4월 11일]
  •     엔베르 호자(알바니아어: Enver Hoxha, 1908년 10월 16일 ~ 1985년 4월 11일)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에 맞서 알바니아 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으며, 종전 뒤 사망(1985년)때까지 공산주의 정당인 알바니아 노동당의 총서기로 알바니아를 다스렸다.   그는 엄격한 스탈린주의에 의거하여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도 유례없는 폐쇄 정치를 실시하여, 서방은 물론 구 소련·유고슬라비아·중국 등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차례차례 관계가 끊겨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소련에 대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등지에 군을 투입하는 것을 보면서 국토 곳곳과 해안가에 전투벙커와 방공호를 설치하고 전 국민에게 무기를 지급하는 등, 적대시하였다.   1967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무신론 국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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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3-17
    • 5190
  •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1918년 1월 26일, 루마니아 - 1989년 12월 25일
  •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사진출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어: Nicolae Ceauşescu, 문화어: 니꼴라이 차우쉐스꾸[1], IPA: [nikoˈla.e t͡ʃa.uˈʃesku], 1918년 1월 26일 ~ 1989년 12월 25일)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1965년부터 1989년 총살되기 며칠 전까지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 원수(1974년부터는 대통령)을 지냈으며 1989년 자신의 정권이 무너지자 도주를 시도하다가 총살되었다.   초기 활동[편집] 루마니아 왕국 남부 스코르니체슈티에서 부농의 아들(빈민농가 출신이라는 견해도 있음[2])로 태어난 차우셰스쿠는 11세에 부쿠레슈티로 이주하여 구두 수선공의 견습생이 되었다. 1932년 당시 불법 정당이었던 루마니아 공산당에 가입하여 지역 당서기를 역임하는 활약하였으며 위험한 공산주의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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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1-21
    • 4467
  •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사르테르 수르트 1942 ~ 2011.10.20
  • 쿠데타 집권-장기독재자의 최후   무아마르 알 카다피 [ Muammar al- Qaddafi ]   리비아의 군인, 정치가.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하였으며, 2011년까지 42년간 장기집권했다.   ▶쿠데타후 장기집권 카다피 도주-죽음 동영상으로 보기   이슬람근본주의, 사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아랍공동체 건설을 주장하였으며 인민직접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의회제와 헌법을 폐지하고 석유 등 국가기반시설을 국유화하여 독재권력을 강화했다. 2011년 장기집권과 철권통지에 반발해 일어난 반정부 시위로 권좌에서 물러나 은신 중 사살되었다. 저서로 《녹색서》가 있다.   출생-사망 1942 ~ 2011.10.20 국적 리비아 활동분야 군사, 정치 출생지 리비아 시르테주 수르트 주요저서 《녹색서 The Green Book》(1976,1980)   1942년 리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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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12-15
    • 6062
  • 도조 히데끼: 도꾜 부 고지마치, 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
  • 도조 히데끼 [사진:위키백과]   도조 히데키 (동조영기, 일본어: 東條英機 (とうじょうひでき), 문화어: 도죠 히데끼, 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1941년 10월 18일부터 1944년 7월 18일까지 일본의 제40대 총리를 지냈으며 육군대신, 내무대신, 외무대신, 문부대신, 상공대신, 군수대신 등을 지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으로 손꼽힌다.   생애와 경력[편집] 청년기의 도조도조 히데키는 1884년 도쿄 부 고지마치에서 일본제국 육군 중장 도조 히데노리(東條英敎)[1]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이와테 현으로, 그의 두 형은 도조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였다. 그는 1909년에 이토 가쓰코와 결혼하여 세 아들과 네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1905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17기를 졸업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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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10-16
    • 5290
  • 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 - 칠리, 1915년 11월 25일 - 2006년 12월 10일
  •   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 (스페인어: 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1915년 11월 25일 - 2006년 12월 10일)[1]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칠리(칠레는 틀린 발음)의 대통령을 지낸 칠레의 정치인, 군인이다. 그의 정권 하에서 권위주의적, 강압적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광범위한 경제 개혁이 시행되었다. 좌파 정당,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 인사 등을 약 3천명 정도 학살했고,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당시 공직역임자 등에 대한 탄압 정책이 벌여져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개요[편집]군부독재[편집]   피노체트는 세계역사 처음의 민주적 사회주의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킨 1973년 9월 11일부터 1990년 3월 11일의 대통령 선거까지 칠리를 지배한 군부독재자이다.   실제 축구경기장은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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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8-28
    • 4657
  • 덩샤오핑 (鄧小平) 1904년 8월 22일, 중국 - 1997년 2월 19일
  • [책 표지-청림출판사 제공]   1997년, 향년 93세의 나이로 중국 대륙을 떠나 빛나는 별이 되다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은 20세기가 시작되던 1904년 8월 22일 중국 쓰촨성 광안현 셰시항 파이방촌에서 출생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를 온전히 살아내고, 1997년 2월 19일,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에 베이징에서 93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그야말로 백년 중국을 중원에서 살아낸 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인들은 그를 ‘백년소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일 투쟁부터 마오쩌둥을 따르며 중국 공산당의 핵심으로 떠오르다   덩샤오핑은 항일 무장투쟁부터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과 대장정을 함께한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인물이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인 1918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신념으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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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7-04
    • 3483
  • 요시프 티토 (크로아티아) 1892.5.7 ~ 1980.5.4
  • 요시프 티토[사진출처]   요시프 티토 [ Josip Broz Tito ]   유고슬라비아의 정치가. 공산당 크로아티아 지방위원과 당 서기장을 지냈고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서서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해방전국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해방 후, 수상과 국방상을 거쳐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가의 통일을 지키며 경제건설을 추진하였다.출생-사망 1892.5.7 ~ 1980.5.4   본명 Josip Broz 국적 유고슬라비아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크로아티아   본명은 Josip Broz. 티토는 당원명이다. 크로아티아의 농가에서 태어나 금속노동자가 되었고, 1910년 그 지방의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3년 오스트리아-헝가리군(軍)에 소집되어, 1915년 카르파티아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었고, 그 후 러시아혁명에 투신하였다. 1   920년 귀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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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6-11
    • 2669
  • 김일성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 1994년 7월 8일
  •   출생 - 사망 1912년 ~ 1994년 7월 8일 2시 성격 정치가 출신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지금의 평양시 만경대)   개설   본명은 성주(成柱). 1912년 4월 15일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지금의 평양시 만경대)에서 아버지 김형직(金亨稷)과 어머니 강반석(康盤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보통학교인 창덕학교(彰德學校)를 거쳐 1926년 부모가 있는 만주로 건너가 길림(吉林)에 있는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하였다.   재학중에 타도제국주의동맹·반제청년동맹·공산주의청년동맹 등을 조직하고 1929년에는 만주지구 공산주의청년동맹 서기로 활동, 같은 해 10월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길림 감옥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1932년 4월에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여 장백산맥과 송화강 유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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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5-28
    • 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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