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 1945년 4월 30일 ]


 
1933.1.30 나치당 당수로서 독일 총리에 임명되다
 
1932년 히틀러는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36.8%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이듬해인 1933년 1월 30일 제 1당인 나치당의 당수로서 총리에 임명됐다. 이날을 가리켜 비극의 탄생이라고 해도 될까? 히틀러의 나치 독일 시대가 비로소 도래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를 누른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미 86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젊고 강력한 독일의 지도자에게 총리라는 실질적인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쿠데타를 획책하다가 투옥된 적이 있는데, 10년 만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얻은 것이다.총리가 된지 수년 만에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분명한 목표를 정해두고 총리가 되었는데,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고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잃어버린 조국 땅을 되찾고, 유럽을 포함한 러시아까지 무력으로 합병하는 것 등이었다. 거기에다 어려서부터 체질화된 광적인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
 
히틀러는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 즉 획일화 정책을 통하여 독일 국민을 광장에 모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패닉 상태를 헤매던 독일 경제는 호전되고 있었다. 600만 명의 실업자들은 거리를 헤매다가 대부분 군대와 직장으로 돌아갔다.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아우토반이 건설되었고, 비틀 자동차가 생산되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결과 자국을 옥죄던 베르사유 조약을 능멸하면서 군비를 증강해나갔다. 그러나 이웃국가들은 항의하는 흉내만 냈다.
 
히틀러는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 불행의 원인을 유대인에서 찾았다. 유대인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볼셰비즘을 전개했으며, 교활한 자본주의 힘까지 더해 지구상의 민족들을 정복하고 파멸시키려고 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다. 이 믿음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총리에 취임한 날부터 질풍노도처럼 몰아쳐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까지 내달린 결과 오늘날까지도 히틀러는 상처로 남아 있다.인생의 결정적인 한 시기에 우리의 운명은 급반전한다. 독일은 히틀러의 총리 취임으로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부터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에게 열광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서곡을 나치당의 당원이었던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 연주로 들으면서 히틀러의 평전을 읽는 금요일 저녁은 매우 어두웠다.
 
불 같은 아버지와 애지중지하는 어머니밑에서 자란 낙제생 “모든 점에서 히틀러의 길은 모범적인 경우다. 어떻게 민주주의 제도들을 서서히 무력화시키고 항복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지, 어떻게 국내에서나 국제무대에서 적들을 차례로 속여서 이길 수 있는지,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이 없는 테러 체제를 선전과 폭력을 통해서어떻게 건설하는지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어떤 폭력적인 지배자의 생애도 권력의 지점들을 거쳐서 마침내 진짜 파괴욕 속에서 퇴화하는 과정을 그처럼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런 과정은 히틀러의 상승과 몰락을 교과서적인 모범으로 만들고 있다.”
 
냉정하고 엄격했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1839~1903년)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의 한 대목이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의 소도시 브라우나우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관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그의 세 번째 부인인 클라라 히틀러가 어머니이다. 현모양처의 전형인 어머니는 몇 명의 자녀를 유아기에 잃은 뒤 얻은 히틀러를 애지중지 키웠다. 불 같은 성격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낙제생인 아들을 엄하고 무섭게 다루었고,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로부터 귀한 아들을 보호했다. 어린 시절 히틀러는 ‘목적’ 없는 아이였지만, 바그너의 세계를 꿈꾸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고 그의 영혼에 강력한 천둥번개가 쳤다. 이러한 장면은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 니체 역시 젊은 시절 바그너에 열광했다. 하지만 훗날 바그너의 음악은 단순한 음악과 예술이 아니며 무대 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최면상태에 빠뜨리고 세뇌한다는 비판적인 예언을 했다.
 
그의 예언이 가장 비극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업학교를 겨우 졸업한 히틀러는 화가가 되고 싶은 보헤미안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시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화가의 운명을 주지 않았다. 여러 차례 미술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생계를 위해 그림엽서에 그림을 그려주었다. 순수화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굴욕적인 삶을 살고 있던 몽환적인 청년인 히틀러에게 결정적인 인생의 전환점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1차 세계 대전이었다.
 
"어머니를 땅에 묻은 이후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침상에 몸을 던지고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이불과 베개에 묻었다. 어머니를 땅에 묻은 그날 이후로나는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이런 일을 일으킨 원흉에 대한 증오가 자라났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서 나의 운명을 점점 분명히 자각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자각은 유대인이 독일에 치명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에서 바그너의 장엄한 악극처럼 독일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몽환적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쟁에서의 패배로 국토의 일부를 내놓고, 막대한 전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화가로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그는 한 시절, 자신은 순수 화가이며, 아카데미 화가, 혹은 문필가라고 자칭하고 다녔다. 그는 이루고자 하는 세상과 이룬 세상을 구분하지 못했다. 히틀러의 꿈이 화가나 예술가로 지속되었다면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비극적인 개인의 운명에서 그쳤을 것이다. 그는 탁월한 대중 선동의 연설가이면서 냉철한 정치인이었다. 그 재능은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바그너가 추구한 ‘이루고자 한 세상’에 접목되었다. 그러자 한 개인이 인류를 얼마나 황당한 지경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유대인이 언론 자본을 장악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는 음모론 당시 유럽에서 떠돌고 있던 반유대주의는 오스트리아 빈의 정치선동가 카를 뤼거(Karl Lueger)에 의해 잘 드러난다. 그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유대인의 손에 있고 언론계의 상당 부분도 그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자본, 특히 거대자본의 대부분이 유대인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테러를 행하고 있다’고 연설했다. 히틀러는 뤼거의 대중선동에 공감했다. 그리고 소시민들이 전후 빈곤과 사회주의에 대해 불안해 하는 원인을 유대인들에게서 찾았다. 그는 병적인 상상력으로 유대인들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는 음모론에 집착하고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인종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히틀러는 독일에 대한 열망으로 독일 군에 입대했으며, 무공을 올려 1급 철십자장을 받고 제대했다. 그는 탁월한 대중연설가로 변신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어나갔다. 연설은 대부분 유대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유대인과 그들을 돕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연설은 전후 비참한 독일의 속죄양을 찾고 있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뮌헨의 주요한 투사이자 선동가가 되어 작은 규모의 정치집단인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한다. 히틀러는 독일노동자당의 당기를 디자인했으며, 당명도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NSDAP, 일명 나치스)로 바꾸었다. 이 시절부터 히틀러는 술도 담배도 여자도 멀리하고 연설을 통해 자신의 분노와 꿈을 해소하고 실현시키고자 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광적인 반 유대주의자이면서 정치 깡패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의 노동협회와 통합하면서 2만 명이 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1923년 11월 9일 히틀러는 쿠데타를 꾀했다.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방법을 바꾸었다. 일 년의 감금생활 동안 깊은 사색과 독서를 통해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을 잘 닦아놓았다. 그것은 대중 선동을 통한 집단 애국주의의 발현이었다. 그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치욕적인 베르사유 조약을 넘어서 국토 확장과 경제 번영을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다.
 
히틀러의 최측근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권력을 쥐게 되면 결코 그것을 놓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은 시체가 된 후에만 우리를 그 자리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이 글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결과를 미리 써놓은 듯 하다.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각종 긴급조치와 법률개정을 통해 독일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그를 견제하는 세력들은 총살당하거나 비참하게 일선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1923년 히틀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던 루덴도르프 장군은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이 광적인 사내는 우리나라를 나락에 빠트리고 국민들에게 무한한 비극을 몰고 올 것’ 이라는 편지를 썼다. 하지만, 가속도가 붙은 눈 덩어리처럼 점점 크게 굴러 떨어지는 히틀러를 견제할 세력은 존재할 수 없었다. 유대인에 대한 정책도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다가 1935년 9월 5일에 통과된 ‘뉘른베르크 법’에 의해 독일 내 유대인들을 독일인들과 격리시켰다. 즉 유대인들에게 정치적 사안에 대한 모든 투표권을 박탈하고, 관직에서 배제시켰으며 심지어 유대인과 아리아인의 결혼과 성관계마저 금지시켰다. 독일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독가스로 유대인 1만 5천명 정도만 죽일 수 있다면 ···" 1937년 가을부터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공세를 군사적 공세로 바꾸었다.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를 향한 총구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독일에서도 학생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광적인 독재자 히틀러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독일의 양심을 보여주었던 백장미단의 활동, 쾨르델르가 주동이 되었던 1944년의 히틀러 정권 전복 기도와 군 내부에서 일어난 히틀러 암살 기도 등이다. 전쟁 영웅이었던 롬멜 장군은 히틀러 암살 실패 사건으로 히틀러로부터 자살을 강요 받아 죽었으나 히틀러는 오히려 최대한 호화로운 국장을 치름으로써 왼손으로 오른손에 묻은 피를 닦는 정치적인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히틀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극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 이렇게 쓴다. ‘독가스로 그 타락한 히브리 민족을 1만 2천명 내지 1만 5천명 정도만 죽일 수 있다면, 전선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된다고 해도 헛된 일은 아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들의 무덤이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참혹하였기에 결국 히틀러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그가 전쟁을 도발하면서 세웠던 목표는 거의 다 실패로 돌아갔다. 폐허가 된 독일. 세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대신 전 영토와 경제적 기반, 국력, 독립, 도덕성마저도 잃어버렸다. 단 하나만이 성공적이었다. 대서양에서 볼가 강 사이의 유대인들을 거의 완전하게 말살한 일이었다. 그는 자살하는 순간까지도 독일 패전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후손들에게 인종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라고 당부했다. 1945년 4월 30일 나치와 히틀러는 죽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은 산 자의 몸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날은 독일인과 전 세계인이 ‘타 문화에 대한 소통’을 거부한 댓가로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얻게됐는지다시금 깨닫게된날이다.
 
글 원재훈 | 시인, 소설가
글을 쓴 원재훈은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했으며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등의 시집과 <만남, 은어와 함께 보낸 하루>, <모닝커피>등의 소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작가이다.
 

Comment



  • [세계의 독재자 73]
  • ▲ 영국 인명사전에서 분류한 세계 독재자 73명 [출처] [핏발울 배너 출처]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체제는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 독재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다양한 문화까지 부정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농부가 뿌린만큼, 일한만큼 수확하는 것이 당연하듯,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의 수직적 사회이동이 보장되어있어야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여러 정치적 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가 실험적이라 할 만큼 존재했습니다. 이 많은 여러 분야의 제도 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체질에 어울리지 않는 체제나 제도는 자연스럽게 기피대상이 되며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법학 …

    • SVT
    • 15-01-27
    • 10772
  • 사담 후세인 1937년 4월 28일 (이라크) - 2006년 12월 30일
  •   전 이라크 대통령이다. 1937년 티그리스강 유역의 티크리트지방에서 출생한 후세인은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숙부의 손에서 자라났다. 카이로대학과 바그다드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 바트당에 가입하였다. 1959년 당시 총리였던 압델 카림 카셈의 암살모의사건에 가담하였던 그는 계획이 중도에 탄로 나는 바람에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로 피신하였다.   1963년 바트당 장교들의 군사 쿠데타가 성공, 이라크로 돌아온 후세인은 9개월 만에 바트당 정권이 붕괴되는 바람에 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1966년 출감한 그는 2년 후인 1968년 또 한 차례의 쿠데타에 가담하였으며, 쿠데타의 주역 바르크 장군 밑에서 부통령(혁명평의회 부의장)직을 맡았다. 1979년 바르크 대통령이 사임함에 따라 대권을 넘겨받게 되었다.   대…

    • SVT
    • 15-05-12
    • 3368
  • 블라디미르 레닌 [ Lenin, Vladimir Il`Ich ] (신빌리스크) 1870. 4. 22. ~ 1924. 1. 21
  •   출생 - 사망 1870. 4. 22. ~ 1924. 1. 21. 출생지 신빌리스크(현재 울리야노프스크) 직업 러시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지도자 분야 마르크스주의 국적 러시아 관련인물 마르크스, 엥겔스   경력사항 페테르부르크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룹을 '노동자 계급 해방투쟁 동맹' 으로 통일 후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됨(1895~) 1900년 국외로 망명 후 마르크스주의 신문 「이스카라」 발행 볼셰비키 당 건설(1903~) 제1차 러시아 혁명 주도(1905~)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주도(1917~) 10월 사회주의 혁명 성공(1917~)   마르크스, 엥겔스의 후계자, 러시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지도자, 러시아 공산당 및 소비에트 연방국가의 창설자. 신빌리스크(현재 울리야노프스크)의 학교 교사의 가정에서 4월22일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쟌 대학 법과에 입…

    • SVT
    • 15-04-23
    • 4759
  • 박정희 (경상북도 구미) 1917년 11월 14일 - 1979년 10월 26일
  •   1917∼1979. 군인·정치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중수(中樹). 경상북도 구미 출생. 빈농인 아버지 박성빈(朴成彬)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문경소학교에서 3년간 교직생활을 한 다음, 1940년 만주의 신경군관학교(新京軍官學校) 제2기생으로 입학, 군문에 들어갔다. 이 군관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수료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로 전학, 1944년 졸업과 함께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관동군(關東軍)에 배치되었다.   광복 때까지 만주와 화북지방에서 일본군 장교로 전쟁에 가담했다가, 1946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제2기로 졸업하고 육군대위로 임관되었다. 6·25전쟁 동안…

    • SVT
    • 15-03-26
    • 3408
  • 김정일 (만경대) 1942년 2월 16일 - 2011년 12월 17일
  •   김정일(金正日)은 1942년 2월 16일, 항일유격대 지도자 김일성과 항일유격대원이던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고평면 남리(현재의 만경대)에서 3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지주 집안의 묘기지였다고 전한다. 할아버지 김형직은 평양의 유명한 미션스쿨인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에 기독교 계통인 명신학교의 교사생활을 한 바 있다. 할머니 강반석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고 전한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1919년 함경북도 회령생으로 1935년 9월 항일유격대에 가입하여 1936년 이후 김일성이 지휘하는 항일연군 제1로군 6사에서 공작대원과 작식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녀가 김일성을 처음 만난 것은 1935년 3월경이었으나 결혼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가 일제의 대토벌을 …

    • SVT
    • 15-03-13
    • 2186
  • 모하메드 레자 팔라비 (테헤란 1919년 10월 16일 - 1980년 7월 27일)
  •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페르시아어: محمدرضا شاه پهلوی Moḥammad Rezā Shāh Pahlavī, 1919년 10월 16일 - 1980년 7월 27일)는 팔라비 왕조의 제2대 샤(황제)이자 이란의 마지막 군주이다.   초기 생애와 즉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레자 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5년 재상이던 아버지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카자르 왕조를 타도하고 샤의 자리에 오르자 황태자가 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 협력하는 정책을 펴다 영국과 소련 등 연합국의 압력으로 부황(父皇)이 퇴위하자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친미 노선   1953년 석유 국유화(國有化)를 추진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가 샤의 권력을 위협하게 되자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그를 실각시켰다.   친위쿠데타…

    • SVT
    • 15-02-20
    • 2533
  • 프란시스코 프랑코 (갈리시아 엘페롤) 1892.12.4 ~ 1975.11.20
  •   갈리시아 엘페롤 출생. 알카사르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族)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1921년 장군이 되었다. 1928년 사라고사에 신설된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나 1931년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1933년 사관학교는 폐쇄되고 발레아레스섬으로 좌천되었다.   1935년 10월 무어인 부대와 외인부대를 이끌고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봉기를 진압, 참모총장이 되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즉각 반(反)정부 쿠데타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정부에 의해서 카나리아제도(諸島)의 수비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해 7월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얼마 후 반란군측의 주요인물이 사망 혹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세력이 커져 10월 국민당 …

    • SVT
    • 15-02-10
    • 2715
  • 호지명(호치민) 1890년 5월 19일 (베트남) - 1969년 9월 2일
  •   본명은 응웬 닷 탕(Nguyen Tat Thanh)이지만 어릴적 이름은 응웬 싱 콘이라고 불렀다. 호치민은 가명과 필명이 160여개가 되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베트남의 중부지방이며 행정구역은 응헤안주에 있는 호앙쭈(Hoang Tru)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훼이서 북쪽으로 360km떨어진 오지였으며 주변환경은 혹독했다. 그의 아버지는 농민출신으로 평범한 지식인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훼에서 관직에 올랐지만 그해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관직에서 오래가지 못해 면직되었다(1929년 사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응웬 닷 탕의 생활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1911년 발전된 서구의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의 6000톤급 증기선(船)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갔다.   1914~1919년까지는 …

    • SVT
    • 15-02-07
    • 3226
  • 마오쩌둥 1893년 12월 26일 (중국) - 1976년 9월 9일
  •   1967.1.8 반마오파가 제거되면서 중국의 문화혁명은 폭력혁명의 길로 달려갔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의 정치적 열광이 정점에 이른 시기를 1967년 1월 8일 반마오파를 제거한 시점부터라고 보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이른바 마오의 후반기 권력 독점이 시작되고 폭력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된 것이덩과 류가 제거된 시점부터라고 보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혁명, 엇갈리는 평가   문화혁명이 언제 시작돼서 언제 끝났는지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단지 베이징(北京)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대대적인 도전을 시작한 1966년부터 마오의 추종자인 4인방 세력이 축출되고 마오가 사망한 1976년까지를 문화혁명 기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SVT
    • 15-02-05
    • 2325
  • 베니토 무솔리니 1883년 7월 29일 (이탈리아) - 1945년 4월 28일
  •   무솔리니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는 점은, 그에게는 도무지 일관성이라는 게 없었다는 점이다. 가령 움베르토 에코는 “무솔리니에게 철학 따위는 없었다. 단지 그럴듯한 말뿐”이라고 말했다. 무솔리니는 극좌에서 극우로 변신했고, 코스모폴리탄이었다가 국가주의자가 되었으며, 왕년의 무신론자로서 집권 중에는 자신을 “신이 이탈리아에 내리신 선물”이라 말했고, 왕정을 기필코 타도해야 한다고 했다가, 국왕의 보호자를 자처했다가, 다시 왕정반대론자로 돌아섰다. 그 자신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파시즘은 어떤 고정된 신념체계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불안   1870년, 중세 이래 천 년이 넘도록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던 이탈리아는 마침내 통일되었다. 하…

    • SVT
    • 15-02-01
    • 2302
  • 이오시프 스탈린 1879년 12월 18일 (조지아) - 1953년 3월 5일
  •   1907년 12월 5일, 지금은 독립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이지만 당시는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었던 바쿠에서 한 여인이 티푸스로 죽었다. 예카테리나 스바드니제. 그녀는 약 2년 동안의 결혼생활 동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린 끝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 남편은 그녀를 절절히 사랑하기도 했었다. 아내를 묻는 자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긴 통곡 끝에,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인간적인 감정도 죽고 말았네.” 그랬다.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이제는 2년 전 레닌이 붙여 준 스탈린(강철의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 남자는 끝이 없는 비인간성으로 이후 46년의 세월을 살게 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인민의 피 위에, 강철의 제국을 건설한다.   러시아 혁…

    • SVT
    • 15-01-28
    • 2673
  • 아돌프 히틀러 [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 1945년 4월 30일 ]
  •   1933.1.30 나치당 당수로서 독일 총리에 임명되다   1932년 히틀러는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36.8%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이듬해인 1933년 1월 30일 제 1당인 나치당의 당수로서 총리에 임명됐다. 이날을 가리켜 비극의 탄생이라고 해도 될까? 히틀러의 나치 독일 시대가 비로소 도래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를 누른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미 86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젊고 강력한 독일의 지도자에게 총리라는 실질적인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쿠데타를 획책하다가 투옥된 적이 있는데, 10년 만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얻은 것이다.총리가 된지 수년 만에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분명한 목표를 정해두고 총리가 되었는데, 무너진 경제…

    • SVT
    • 15-01-27
    • 1820
  • [세계의 독재자 73]
  • ▲ 영국 인명사전에서 분류한 세계 독재자 73명 [출처] [핏발울 배너 출처]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체제는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 독재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다양한 문화까지 부정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농부가 뿌린만큼, 일한만큼 수확하는 것이 당연하듯,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의 수직적 사회이동이 보장되어있어야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여러 정치적 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가 실험적이라 할 만큼 존재했습니다. 이 많은 여러 분야의 제도 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체질에 어울리지 않는 체제나 제도는 자연스럽게 기피대상이 되며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법학 …

    • SVT
    • 15-01-27
    • 10772
12

[ 시사 View 社說 ]

바늘 허리에 실 매… 사진=6sqft입력 2020.7.8. [시사뷰타임즈] 미국이 10여일 가까이 하루에 2~3천 명... 더보기

[BTI] 베스트 번역·통역

[BTI] 베스트 번역·통역원은 어떤 곳인가? ◇ 영어전문업체 [영작·한역·통역] <시사뷰타임즈> 우측 상단에 베스트 번역·통역 안... 더보기

[ 시사뷰타임즈 영상 ]

전과 후 [RT 제공 동영상으로 우리 돈 날아가는 어이없는 영상 보기] 관련기사[속보] 北, 한국과 대... 더보기

[지카 바이러스]

유전자 조작 곰팡이, 멀레어리아 모기 99% 신속 박멸: 연구 결과 유전자 조작 곰팡이에 감염된 모기는 녹색을 띈다 Image copyrightBRIAN LOVETT 입력 2019.5.31.BBC 원... 더보기

[SVT 영어회화]

이직도 日帝식 영어발음 해야 양심(?)이 편한 자들! 아래 영상엔 윗 사진에나오는 흑인녀가 말을 하고 있고 자막으로도 적혀 나온다. 같이 따... 더보기

[역사 속의 오늘]

[인사말씀] 그동안 오늘의 역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5년 첫눈 풍경. 아직 열린감을 따지도 않았는데 감과 나뭇가지 위에 눈이 쌓여있다 <시... 더보기

[시사뷰 클릭 베스트]

독자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시사뷰타임즈 클릭 베스트’는 조횟수가 1천이 넘는 기사 또는 글을 올려놓는 곳입니다... 더보기

[ 세계의 독재자들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1889.4.28 ~ 1970.7.27(폴츄걸, 산타콩바당) 입력 2017.11.2[시사뷰타임즈]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폴츄걸어: António de Oliveira Sa... 더보기

[건강 Health ]

G4 EA H1N1: 또 중국! 세계적 전염병 될 신형 돼지 바이러스 등장 새로 발견된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는 2009년에 전세게적으로 확산됐더 돼지 유행성 바이러... 더보기

[ 전국 맛집 기행 ]

[복수한우날고기] 한우우거지국밥, 선지국밥 모두 3,500원? 위치: 대전광역시 중구 태평로 120(테평동 375-8) 입력 2020.6.3. [시사뷰타임즈] 이곳은 이미 ‘... 더보기

[고사성어]

박찬종의 격화소양 (隔靴搔癢) 입력 2019.6.5. [시사뷰타임즈] ‘강적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찬종, 이재오는 ‘보... 더보기

[SVT 촛불문화제 보도물]

공공기관을 국민의 품으로! 민영화반대, 민주수호 범국민 촛불 http://wjsfree.tistory.com/75 March 22, 2014 Pan-Citizen Action Day Park Geun-hye who was illegally elected take respons... 더보기

[터져나오는 시국선언!]

[역대 대통령 개관]

박정희-1 한국:새로운 위험 요소들 이란 제목의 타임지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음력 9월 30일)... 더보기

[역대 정당 개관]

민주당의 역사 출처 198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의 대통령후보 출마를 위해 창당된 평화민주당(平和民... 더보기

[SVT 컴퓨터문제 해결]

수퍼마이크로, 4 소켓 서버 출시 컴퓨팅, 스토리지, I/O 리소스를 최대화하는 균형적 설계의 New SuperServer는 4개의 3세대 인텔 ... 더보기

[18대 대선 부정선거실체]

'제18대 대선 선거무효소송인단, 부정선거 관련 책 발간 (광고) 『제18대 대통령 부정선거 전자개표기 미분류표 집계 총람』책을 냈습니다! 안녕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