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프랑코 (갈리시아 엘페롤) 1892.12.4 ~ 1975.11.20


 
갈리시아 엘페롤 출생. 알카사르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族)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1921년 장군이 되었다. 1928년 사라고사에 신설된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나 1931년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1933년 사관학교는 폐쇄되고 발레아레스섬으로 좌천되었다.
 
1935년 10월 무어인 부대와 외인부대를 이끌고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봉기를 진압, 참모총장이 되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즉각 반(反)정부 쿠데타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정부에 의해서 카나리아제도(諸島)의 수비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해 7월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얼마 후 반란군측의 주요인물이 사망 혹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세력이 커져 10월 국민당 정부 수반 및 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 후 2년 반에 걸친 에스파냐 내란에 승리, 팔랑헤당(黨)의 1당 독재에 의한 파시즘국가를 수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명목상으로 중립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독일 ·이탈리아를 지원하였기 때문에 전후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기는 표면적으로는 자유화의 기운이 돌았고 1955년 미국의 반공정책에 따라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1966년 종신주석의 지위를 확립하고 1969년 국회에서 그가 죽거나 집정이 불가능해지면 부르봉가(家)의 후안 왕자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를 것을 선언하였다. [두산백과]
 
최연소 장군
 
프랑코는 1892년에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군인이었던 그는 모로코의 게릴라전에서 용맹을 떨치며 유능한 장교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12년부터 1925년까지 모로코에서만 근무했다. 그 후 계속 승진하여 33세에 장군으로 진급, 나폴레옹 이래 유럽 최초의 최연소 장군이 되었다. 그는 지휘에 능했으며 사회의 규범을 군대식으로 해석했다.
 
즉 군인은 훌륭한 지휘 하에서만 복종을 잘하고 국민 또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민간인의 불복종은 바로 반란이었다. 따라서 1934년에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발생한 광부들의 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도 프랑코 장군의 엄격한 규율 지상주의에 의한 것이었다.
 
프랑코는 기묘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지만 처량하고 작은 목소리 때문에 인상적인 대중 연설가는 되지 못했다. 가끔씩 그는 공무를 뒤로 하고 며칠씩 낚시와 사냥을 즐기곤 했다. 그는 매우 가정적이며 전통적으로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었던 반면에, 모든 사람이 그의 면전에서는 겁에 질려 떨면서 양같이 온순하게 행동할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
 
다음은 모로코에서 일선 외인부대를 지휘할 때의 이야기이다. 이 일화에서 프랑코의 규율 지상주의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번은 보급된 식료품이 매우 좋지 않아서 병사들의 불평이 터져나왔는데, 겁 없는 졸병이 프랑코의 얼굴에 배급받은 음식을 던져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코는 식당 당직 장교를 급히 불러 불평한 병사 앞에서 '식사의 질을 즉각 끌어올려라'고 명령하고서는, 티끌만큼의 동요 없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이 병사를 끌어내 즉각 총살형에 처하라.'"
 
준엄한 규율이었다. 프랑코는 이처럼 상사에게 대드는 자는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무자비한 규율 지상주의자의 태도를 지닌 군인이었다.
 
독재자 프랑코
 
프랑코는 마드리드에 입성한 1939년 4월부터 1975년 11월, 그가 죽을 때까지 스페인을 통치했다. 그는 1936년 9월에 동료 장군들에 의해서 스페인 정부 수반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동전에 새겨져 있듯이 총통이고, 국가원수이고, 정부 수반이며, 또 내각의 의장이기도 했다.
 
프랑코는 1938년 1월과 8월에 공포한 두 개의 법령을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모든 법률과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부여받았다. 그의 법률 담당 변호사들은 그의 권력에 대해서 '프랑코는 입헌 독재자이고, 그의 권한은 자기 스스로 내리는 한계 외에는 제한이 없다'고 말해왔다. 프랑코 자신이 언명했듯이 그의 독재권 행사에는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그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현명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그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해야 했다. 정치는 물론 모든 국민의 일상 생활을 장악했던 프랑코는 무슨 일이든, 무슨 정책이든 최종 결정권자였다. 한 마디로 모든 카드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다"
 
또한 프랑코는 단호한 절대 군주였다. "짐은 곧 국가다."라고 루이 14세는 말했다지만 '프랑코는 곧 스페인'이었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는 항상 "나는 역사와 천주님에게만 책임진다."고 말했다. 편리한 논리였다. 프랑코는 한 마디로 '위대한 스페인'을 외쳤다. 가톨릭 왕들이 다스렸던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걸쳤던 웅대한 제국으로서의 스페인이야말로 프랑코의 뇌리에 입력된 위대한 스페인이었다. 그리고 프랑코는 이 '위대한 스페인'이 '평등 선거'나 '의회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다고 믿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스페인을 쇠퇴하게 한 것은 19세기의 자유주의 사상이었고 자유 민주주의라는 깃발 아래 사리사욕에 날뛰는 정당 정치인들이었다. 프랑코는 "나는 정당을 미워한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했다.
 
내전이 끝나자 그는 모든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분쇄했다. 그에게는 군대, 강력한 가톨릭 교회, 그리고 팔랑헤당의 지지가 있었다. 이런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끄럽고 위험한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이 씨를 말렸고, 자유주의자, 수정주의자, 나아가서는 막연히 민주주의자로 낙인찍힌 사람, 그리고 반프랑코 분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을 투옥시켰다.
 
정치 단체나 노동조합 등 일체의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반정부 성향의 언론사는 폐쇄되었으며 언론인은 모두 투옥되었다. 그 누구도 대항할 자가 없었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내전이 끝난 후, 힘에 의한 안정을 찾았을 때 그는 "우리는 투표 행위 따위의 위선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얻지 않았다. 우리는 총칼로써 그리고 가장 훌륭한 동지들의 피로써 정권을 얻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는 획득한 권좌는 절대로 어떤 경우든 내놓을 수도 없고, 필요하다면 총칼과 피로써 수호하겠다는 무서운 결의의 표명이었다.
 
[글/사진 출처-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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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박찬종의 격화소양 (隔靴搔癢) 입력 2019.6.5. [시사뷰타임즈] ‘강적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찬종, 이재오는 ‘보... 더보기

[SVT 촛불문화제 보도물]

공공기관을 국민의 품으로! 민영화반대, 민주수호 범국민 촛불 http://wjsfree.tistory.com/75 March 22, 2014 Pan-Citizen Action Day Park Geun-hye who was illegally elected take respons... 더보기

[터져나오는 시국선언!]

[역대 대통령 개관]

박정희-1 한국:새로운 위험 요소들 이란 제목의 타임지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음력 9월 30일)... 더보기

[역대 정당 개관]

민주당의 역사 출처 198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의 대통령후보 출마를 위해 창당된 평화민주당(平和民... 더보기

[SVT 컴퓨터문제 해결]

수퍼마이크로, 4 소켓 서버 출시 컴퓨팅, 스토리지, I/O 리소스를 최대화하는 균형적 설계의 New SuperServer는 4개의 3세대 인텔 ... 더보기

[18대 대선 부정선거실체]

'제18대 대선 선거무효소송인단, 부정선거 관련 책 발간 (광고) 『제18대 대통령 부정선거 전자개표기 미분류표 집계 총람』책을 냈습니다! 안녕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