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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화기관 속에 예기치 않게 생긴 ‘창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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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원문 2022.5.17. [시사뷰타임즈] 과학적 연구가 너무 멀리 가는 조치를 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영상에서- 화면해설: 그리스 신화에서, 프러미씨어스 (프로메테우스) 는 인간들을 너무도 많이 사랑했던 타이튼 (타이탄: 대단히 건장하고 지혜로운 사람) 이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불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다른 신들과 함께 한 연회에서 그는 인간들에게 고기의 가장 좋은 부위들을 남겨 주려 했다. 이런 류의 관대함이 슈스 (제우스) 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프러미씨어스는 슈스가 산에 쇠사슬로 연결돼 있다고 맹비난했고 독수리가 그의 간을 먹게 했다. 매일 밤, 간은 다시 자라 그 다음날 게걸스럽게 먹힐 준비가 돼 있곤 했다. 재발하여 반복되는 위통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친숙할 이 고민거리는, 신보다 한 수 앞서기를 원한 것에 대한 벌이다. 사람들에게 불을 주면서, 프러미씨어스는 첫 번째로 중요한 도구를 제공했는데, 첫 번째 단계인 기술, 과학,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너무도 멀리 앞서 나간 것이었을 터이고, 그러다 보니, 불길하게도, 끝이 좋지 않았다. 전 애너 브레써닌이며 이것은 탈바꿈이며 우리의 변화하는 몸에 대한 일련의 탐험입니다. 다음의 일화에서, 우린 위장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매덜린 좐슨은 내과의사이자 저자인 재아슨 칼라위쉬 박사와 면담을 했는데, 이 박사가 우리들에게 자제되지 않은 과학적 야심으로 신 노릇을 한 결말을 탐구하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이 아야기는 몸에 구멍이 난 채로 살아가는 한 남자에 대한 믿기도 어려운 이야기이며, 프러미씨어스처럼 그의 간이 아니라 이 남자의 위장에 대한 이야기다. 제이슨 칼라위쉬 박사, 내과의사이자 작가: “윌리엄 뷰먼트에 대해 내가 최초로 알게된 것은 의대에서 위장 체계에 대한 병리 생리학 강의 시간 동안이었다. 이것은 더 연구를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단순한 이야기로 등장했다가 믿기 어려 울 정도로 복잡하게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음, 그는 영웅이 되려다가 매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1. 윌리엄 뷰먼트 박사 & 얼렉시스 세인트 마틴 제이슨 칼라위쉬 박사, 내과의사이자 작가: “윌리엄 뷰먼트는 커네티컷의 농부 가족 출신이고, 어떤 종류건 대학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 이 되려는 노력 속에 거의 집을 나간 사람이었다. 한편, 얼렉시스에 대해선 우리가 아는게 거의 없지만, 말하자면,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덫을 놓아 동물을 사냥하여 모피를 얻는 프랑스인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모피 사냥꾼들은, 미국인들과 영국인들 눈에는, 2등 시민 (사회적 약자) 들이었다. 두 가지 매우 다른 배경으로 두 면은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다. 만일 이들이 다른 정황에서 만났었더라면, 이들이 친구가 됐을 것이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2. 맥키낵 섬에서의 사건 1822년6월2일, 잡화점에서 우연히 엽총이 발사되고 얼렉시스 세인트 마틴은 불행스럽게도 자신의 옆구리에 빗나간 총상을 입는다. 그러나 버먼트가 그를 보살펴 주었다. 그는 단지 칠면조 알 크기의 허파를 움켜쥐고, 그 허파를 밀어넣고, 상처를 덮었다. 그런데 그렇지만 결과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작은 내장인 십이지장 밖으로 나가는 대신, 얼렉시스의 위장 속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이 총알 구멍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그 구멍은 누관 -상처·질병으로 인해 인체에 생긴 구멍- 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위장이 그를 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저주한 것이었으니, 딱한 얼렉시스다. 그리고 버먼트는 이것 치유될 것이 아니라는 걸 좀 결국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깨닫기 시직한 것이 ‘이 친구 위장 속으로 난 창문이 생겼으니 난 위장을 연구할 수도 있다’ 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이 사례를 진정으로 미국인의 실험 정신이라고 여기는 이유이다.저질 수준의 과학적 탐험자가 생긴 것이다. 일종의 제한이 없는 가능성이 있는 방대한 영역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제반 사정이 기괴하게 된다. 3. 십년 간의 실험 매일 같이, 주어진 기간 내에서, 각 끼니 마다 기록된다. 그는 이 실험에 다양한 품목들을 투입하며 얼렉시스의 몸 속에 어떻게 들어가며 소화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를 살피곤 했고 또한 위액을 채취하는데, 이건 그가 얼렉시스에게서 수확하곤 한 것이고 병들 속에 넣었으며 그리고는 병들 속에서 소화시키는데 얼마나 걸리는 지를 살폈다. 그는 얼렉시스가 이 병 두 개를 얼렉시스의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게 했는데, 병 속에 있는 위액에 인체의 체온을 제공하기 위함이었고 체열이 이 위액에 추가되는지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이런 것들은 비전문가스러운 실험류이었던 것이, 그는 얼렉시스의 체중을 옳게 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쓸모 없는 그런 것이었지만, 그의 한 가지 발견에는 점수를 주겠다. 그는 진짜로 위장의 소화란 화학물질로 인해 처리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확립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밝혀낸 것을 위해 그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4. 결별 뷰먼트가 살았던 시절에 조차도, 사람들은 그가 얼렉시스를 대하는 방식에 의문을 품었다. 뷰먼트에겐 얼렉시스를 옆에 계속 있게해야 할 이유란 전혀 없었다. 내 말은, 뷰먼트나 일단 얼렉시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자, 그는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시점에서의 임무는 얼렉시스를 어떻게 보살피느냐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얼렉시스를 연구하고 그를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었다. 뷰먼트와 얼렉시스는 계약을 하게 됐고 그래서 뷰먼트가 얼렉시스를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일은 서류로 존재하며 난해한 법률용어로 적혀있고 얼렉시스 세인트 마틴이 무슨 실험이 됐건 따르겠다는 매혹적인 문서이다. 그리고 뷰먼트가 얼렉시스의 비용을 대주었고 지원해 주고 숙식을 제공해 주었던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계약이 끝나가자, 얼렉시스는 좀 지쳤고 자신의 가족들이 그리웠다. 당시 얼렉시스에겐 아내와 자식이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약이 끝나면서 그는 “난 캐나다로 갈 거다”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게 1850년 쯤 일이었고, 30년인가 그 정도 후, 뷰먼트는 얼렉시스에게 자신에게 오라고 구걸하는 편지를 쓴다. 뭐 ‘날 실망시키지 말아달라’ 는 등의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편지 읽은 것을 기억하는데, 내 경우에는, 뭔 일이 있었다고? 왜? 라는 식이다. 난 그에게도 이런 류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얼렉시스를 이곳에 오게할 것이며 그를 좀 더 연구할 것이다. 연구를 좀 더 할 것이며, 안될 것이 뭐냐는 것이다. 얼렉시스는 다시는 오지 않았고, 그는 결코 되돌아 오지 않았다. 5. 복잡한 유산 음, 이건 내과의사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내과 과학자들에게 그러한 바, 뷰먼트의 충고성 이야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이야기다. 그가 얼렉시스에게 했던 것은, 그 여러 정황들은, 그들이 어떻게 의사-환자처럼 됐으며, 얼렉시스는 누구였고, 그가 어떻게 대우를 받았으며,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얼렉시스에게 당시에했던 것, 그가 연구를 수행했던 방식, 성공적인 연구자가 되려고 그의 노력을 기울인 방식, 모든 것에 특유한 미국인의 취향 및 감정 그리고 윤리가 있으며, 이 생각을 진행하겠다는 것, 단지 여행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써였다. 넌 계속 진행해야만 해, 진행하자. 그러나 물론, ‘난 과학의 진전을 돕고 싶고 얼렉시스를 돕고 싶다’ 는 미덕하에 포함된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가 야심만만하단 것을 물론 인정하지 않는데, 왜냐면 그건 틀인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말은 기본적으로 뷰먼트는 정말이지 유명해 지고 싶고, 잘 살고 또 좋은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며 모든 것을 시도했고 그길에 누가 타협적으로 끼어들지 않게 했다는 얘기다. 사람은 그러한 모든 미덕들을 완벽하게 균형을 맞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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